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보면 운이 참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든다. 1961년 생으로 올해 나이 47세. 초선 상원의원이라는 경력으로 미국 역사상 최초로 흑인 대통령 후보 지명을 거머쥔 데 이어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미국 대통령 자리까지 목전에 두고 있으니 말이다.
중앙무대 4년 만의 기적적 진출
오바마가 인종의 벽을 뛰어넘어 '담대한 꿈'을 이룰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몇 달 전만 해도 많지 않았다. 베테랑 정치인이 즐비한 워싱턴에서 2004년에야 중앙무대에 진출한 그가 불과 4년 만에 여기까지 왔다는 것은 '경력'과 '검증'을 중시하는 미국 사회의 기준에서 보면 기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7월 보스턴 전당대회에서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신분으로 "보수의 미국도, 진보의 미국도 없으며 오로지 미합중국만이 있다"며 단합을 외친 그의 연설은 4년 후 오늘의 위치를 예감한 듯 하다.
오바마가 태어난 1960년대는 흑백차별이 극에 달했던 시기였다. 흑인 남성이 음탕한 눈으로 백인 여성을 쳐다보기만 해도 나무에 목이 매달렸다.
그러나 그가 태어난 하와이는 소수인종이 많고 본토와 정치, 문화적으로 떨어져 편견이 덜했다. 그의 외가 백인 조부모는 딸이 흑인과 결혼한다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딸이 남편과 헤어진 다음에도 검은 피부의 손자를 딸 못지않은 사랑으로 키웠다.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얼마나 애틋했으면 오바마가 대선을 불과 10여일 앞둔 중요한 시기에 이틀씩이나 선거일정을 중단하고 외할머니를 문안하러 하와이로 갔을까.
오바마의 행운은 대통령 선거전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9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세라 페일린 알래스카 주지사가 부통령 후보로 깜짝 지명되면서 판세는 요동쳤다. 앞서 가던 오바바의 지지도는 정통 보수주의를 앞세운 페일린의 '문화전쟁'에 휘말려 순식간에 열세로 돌변했다.
'10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하는 위기'라는 월스트리트의 금융 위기가 그 때 터져주지 않았다면 상황은 어땠을까. 모든 이슈를 삼켜버린 금융대란 덕에 오바마는 한창 탄력을 붙일 기세였던 보수이념 공세를 조기에 차단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사실상 승부는 끝났다.
조지프 바이든 민주당 부통령 후보는 지난달 선거자금 모금행사에서 "오바마가 당선된 뒤 6개월 내 위기를 맞을 것"이라며 "각국 지도자들이 그의 리더십을 시험할 것"이라고 말해 홍역을 치렀다. 매케인은 이 말을 꼬투리 잡아 "대통령이 된 다음에도 테스트를 받을 바에는 차라리 대통령이 되지 않겠다"고 비꼬았다.
이젠 '대통령의 실력'을 증명해야
바이든의 발언이 오바마의 능력을 의심하는 취지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대통령 오바마'의 자질을 입증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행간의 의미를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가 아닐 듯 싶다. 매케인이 네거티브 공세로 오히려 점수를 까먹었지만 오바마가 대통령 감임을 증명할 수 있는 경력과 경험이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맞는 말이다.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이 의회 상ㆍ하원까지 장악할 것으로 보여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환경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이보다 더 좋은 멍석이 깔릴 수는 없다. 이라크ㆍ아프간 전쟁, 금융대란 등 난제를 앞에 두고 있는 오바마는 이제부터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흑인 대통령이 반짝 4년의 정치실험으로 끝나기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황유석 워싱턴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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