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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카고 발 '오바마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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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카고 발 '오바마 바람'

입력
2008.11.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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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한 호러작가 쓰네카와 고타로(恒川光太郞)의 최신작 <가을의 감옥> 이라는 소설에는 11월 7일에 갇혀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에게 11월 8일은 오지 않는다. 그저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11월 7일이 반복될 뿐이다. 그들이 11월 7일에 갇히게 된 이유는 그들도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11월 7일을 벗어나 11월 8일로 갈 수 있는 방법도 모를 뿐더러, 실제로 11월 8일로 갈 수 있을 지조차도 알지 못한다.

'감옥'에서 스스로 벗어난 미국

그들은 그저 무수히 반복되는 11월 7일이 다행히 숙취로 시작되는 하루가 아니고, 부모상을 치르는 하루도 아닌 점을 고마워할 뿐이다. 같은 날의 반복에 지친 그들은 '우리의 본체는 이미 한참 앞질러 가 버렸고, 여기에 있는 우리는 본체가 벗어 던져놓은 그림자 같은 것이 아닐까?

세계는 매일 앞으로 나갈 때마다 그 시간마다에 그림자를 버려두고 가는 것일지도 몰라. 9월 9일에는 그 날짜에 벗어 던진 그림자들이 9월 9일을 영원히 반복하고, 8월 3일에는 8월 3일을 영원히 반복하는 그림자들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거나 '11월 7일 이전의 역사나 인간들의 기억은 세계를 속이려고 교묘하게 만들어진 가짜일 뿐 세계는 애초부터 11월 7일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소설의 주인공들이 11월 7일이라는 감옥을 벗어나 11월 8일로 갈 수 있는지에 대하여 작가는 독자의 상상력에 맡기고 있다. 나는 그들이 모든 이들에게는 평범하지만 그들에게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11월 8일로 가서 평온한 삶을 누리기를 바란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특정한 날을 감옥으로 삼아 주인공들을 가두었지만, 실제 세상에서는 편견의 감옥, 오만의 감옥, 증오의 감옥 등등 자기만의 감옥을 짓고 거기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위 소설의 주인공들보다 더 비극적인 것은 그들이 자기 스스로 감옥을 짓고 그 속에 자신을 가두고서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알려 주어도 결코 그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자신만의 감옥에 스스로의 삶과 미래까지 가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흑인인 오바마를 그들의 대통령으로 선출한 미 국민, 특히 백인들의 선택은 그 동안 그들이 스스로 지어왔던 편견과 오만의 감옥으로부터 자신을 구출해 낸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하여도 대중버스에서조차 흑백의 차별대우가 남아 있어 흑인여성이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기까지 한 미국에서, 그로부터 불과 60년 후에 흑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니 참으로 의미있는 변화라고 할 것이다.

물론 흑인대통령이 선출되었다고 하여 모든 면에서 즉각 흑백의 차별이 철폐되고, 흑백 간 나아가 제 인종 간의 진정한 평등이 단숨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인종 간의 오만과 편견을 넘어 이해와 관용의 길로 가는 뚜렷한 이정표가 놓여졌고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바람이 이 세상 곳곳에 불어가기를 기대해 본다. 오바마의 정치적 고향인 시카고의 별명이 'Windy City 바람의 도시'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공존과 상생 키운 정치적 고향

시카고는 공존을 추구하는 도시이다. 혹한과 혹서가 공존한다. 영하 3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이 있는가 하면, 영상 40도에 육박하는 여름도 있다. 알 카포네로 대표되는 마피아도 있었지만, '시카고 재즈'가 꽃핀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다.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토양인 시카고학파의 산실이지만 빈민 구제활동이 가장 활발한 도시이기도 하다. 혹한과 혹서, 흑과 백, 보수와 진보, 이념과 실용이 공존하는 도시인 셈이다.

이러한 도시를 정치적 고향으로 하는 오바마가 공존과 공영, 상생과 조화의 정치를 펼쳐 세상이 좀더 맑고 밝아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 보는 아침이다.

변환철 중앙대 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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