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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상처 깊은 캄보디아에 우정 심고 왔어요" 한국 청소년들 현지 청소년과 농촌 봉사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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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 상처 깊은 캄보디아에 우정 심고 왔어요" 한국 청소년들 현지 청소년과 농촌 봉사활동

입력
2008.11.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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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차로 1시간30분 가량 떨어진 우동지역 싸다이 마을. 벼를 재배하는 논 주변에, 땅에서 올라오는 습한 기운을 피해 2~3m 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은 나무집들이 늘어선 전형적인 캄보디아 농촌 마을이다.

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지난달 30일 '사건'이 벌어졌다.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과 캄보디아 청소년들이 한데 뭉쳐 주민들의 숙원인 상수도 대공사에 나선 것이다.

캄보디아는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비가 거의 오지 않는데, 이 마을에는 상수도 시설이 없어 건기 때면 오토바이로 30분 이상 걸리는 똘레삽 강까지 물을 뜨러 가야 한다.

청소년들은 마을회관 앞 우물에서 물탱크, 이어 시멘트 저수조까지 20여m를 연결할 파이프를 한 뼘 깊이 땅 속에 묻었다. 열대 몬순지역이라 10월 말인데도 섭씨 30도를 웃돌며 푹푹 찌는 날씨에 이마엔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10월 초 미리 파 놓은 우물에 펌프를 설치하고, 파이프 연결에 앞서 시험 가동했다. 전원을 연결하자 펌프 위로 물이 콸콸 쏟아졌다.

아이들은 손에 물을 받아 서로에게 끼얹으며 '와아~' 환호성을 질러댔다.

같은 시각, 마을회관 옆 청소년센터 마당에서는 직경 2m, 높이 1.5m 크기의 물탱크에 그림을 그려 넣는 작업이 한창이다. 초가집을 배경으로 귀마개와 목도리를 걸친 꼬마가 팽이를 돌리는 한국의 옛 시골 풍경이다.

한국 청소년들과 함께 작업하던 캄보디아 청소년들은 신기한 듯 연신 질문을 쏟아낸다. 생속 첸다(18ㆍ뗏쁘라남고3)양은 "캄보디아에서는 눈을 볼 수 없는데 한국 가서 흠뻑 맞고 싶다"고 말했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청소년진흥센터가 꾸린 '대한민국 청소년자원봉사단' 183명이 지난달 28일부터 열흘동안 캄보디아의 다이엣 깜퐁짬 등 4곳과 라오스의 폰홍 위앙캄 등 4곳을 나눠 방문, 봉사활동을 벌였다. 안전요원, 간호사, 인솔자 등을 뺀 중ㆍ고ㆍ대학생 봉사자는 144명으로, 전국 16개 시도별로 9명씩 선발했다.

이들은 현지 마을회관, 청소년센터, 학교 등에서 낡은 건물에 페인트를 칠하고, 부서진 책상을 고쳤다. '생선을 주기보다 생선 잡는 방법을 알려주자'는 취지로, 한국 봉사단원 1명에 영어를 할 줄 아는 현지 청소년 1명씩 짝을 지어 모든 활동을 함께 했다.

모여서 무언가를 함께 한다는 것 자체가 캄보디아에서는 낯선 풍경이다. 길고 혹독했던 내전의 상처가 낳은 불신 탓이다. 1970년대 크메르 루즈 정권이 반대 세력과 지식인을 무차별 살육, 200만명이 숨졌다.

78~89년 베트남과의 전쟁을 겪었고, 이후 10여년에 걸친 내전이 또 이어졌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마을에 섞여 살면서 사람들은 말을 잃어갔다.

그러나 캄보디아 청소년들은 기성세대들과 달리 낯선 이방인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살갑게 맞았고,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라는 한국어 인사말을 준비했다. 한국 청소년들은 '쭘립쑤어(안녕하세요)'라며 화답했다.

29일 첫 인사를 나눈 아이들은 피부색 다른 짝에게 서툰 영어와 몸짓으로 다가갔다. 쉬는 시간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한국 놀이를 가르쳐줄 때도 긴 말이 필요 없었다. 한두 번 놀이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했다.

더위 탓에 작업을 할 수 없는 오후, 양국 청소년들은 삼삼오오 둘러앉아 손짓, 발짓 섞어가며 서로 자기 나라 말을 가르치기 바빴다. 신푸름(17ㆍ청주여고2)양이 한국어, 영어, 캄보디아어로 쓰인 책에서 'One, Two, Three'를 짚으며 "하나, 둘, 셋"이라고 말하면 짝꿍인 따라빗(20ㆍ프레아 시아누크고3)군이 손가락을 꼽아가며 "모이, 삐, 버이"라고 알려줬다.

봉사활동이 중반을 넘어서며 배탈 환자가 생기고 더위에 지쳐갔지만, 생각만은 깊고 넓어졌다. 우동지역에서 만난 김하란(17ㆍ서울 미림여고2)양은 "가진 것을 주고 많은 것을 배워가는 것이 봉사"라며 "이들에게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열정적인 자세를 보여주고, 조급해 하지 않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다이엣지역에서 활동한 서영준(22ㆍ동아대 관광2)씨는 "새벽 5시면 어린아이까지 모두 일어나 하루를 시작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서 부지런함을 배웠다. 순박한 모습도 닮고 싶다"고 했다.

마지막 날인 4일 오후 깜퐁짬 청소년센터. 이별을 앞둔 아이들이 나란히 마주 섰다. 한국 청소년들이 먼저 일주일을 함께 한 각자의 짝에게 "리어하으이(안녕), 쭙 크니어 뺄 크라우이(나중에 다시 만나자)"라고 인사하자, 캄보디아 청소년들이 더듬거리지만 또렷한 한국말로 "고마워 친구야,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캄보디아와 라오스에 흩어졌던 봉사단은 5일 수도인 프놈펜과 위앙짠을 각각 출발, 6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캄보디아=허정헌 기자 xscop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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