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산보를 나가시는 아버지께서 대문 안에 떨어진 신문을 마루에 놓고 나서신다. 지금 나는 새벽녘에 일어나는 일이 드물지만, 대개 새벽에 들어오다가 마루에 놓인 신문을 가져가 조심스레 펼쳐 놓고, 블론디 만화며 연재소설이며'세상에 이런 일이'류의 기사도 읽고, 한국인이 전 세계 종족 혹은 민족 중에 소장(小腸) 이 가장 길어 매몰된 상황에서 가장 오래 생존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칼럼을 읽으면서, 이 논설위원의 박학다식의 끝은 어디인가 하는 생각도 한다.
아버지가 돌아오시기 전에 신문은 펼쳐 보지 않은 것처럼 다시 고이 접어놓는다. 보통은 아버지께서 신문을 다 보시고 아침을 드시고 상을 물리면서 "신문 가져다 보거라"하시면 내 방으로 가져와 펼쳐 보는 게 습관이었는데. 위의 상황은 내가 좀 자랐을 때의 일이다.
더 어려서는 아마 초등학교 5~6 학년 정도에 시작된 일인데, 유독 한자 공부를 많이 시키셨던 아버지의 교재가 마작과 신문이었다. 마작은 중국 잡기의 하나이니 당연히 한자로 된 마작 패를 돌리며 게임 규칙을 알려주셨다. 흥미 유발로 한자 공부를 더 열심히 하라고 취한 방법치고는 좀 그랬다. 집에는 마작을 위한 원탁과 담요, 상아로 된 조그마한 직사각형 위에 일만(一萬), 이만, 동서남북 등등의 한자가 쓰인 마작 패가 있었다.
그 다음 교재는 당연히 신문이었는데, 숙제는 신문 사설을 읽고 그 사설에 나온 한자어를 찾아 음과 훈을 익히는 방식이었다. 사설을 오려 공책에 붙이고, 굵은 사인펜으로 한자어가 나오는 곳을 표시하고, 한글로 주석을 다는 방식이었다. 그 숙제가 괴로웠는지 어땠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한 가지 난감했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한데, 아버지께서 지방으로 일을 하러 가시게 되면서 또 다른 과제를 하면서부터였다.
그 즈음에 막 연재를 시작한 <명기열전> 이라는 소설을 매일 읽고, 한자어들의 음과 훈을 옥편으로 찾아 아버지께 편지로 붙이는 일이었다. 조선시대 명기들의 이야기라 한자가 많이 들어간 소설이었다. 아버지는 한자 공부를 더 많이 시키려고 택하신 교재이지만, 문제는 제목 그대로 조선시대 명기들의 열전이니 각종 남녀상열지사의 묘사가 예사롭지 않았다는 것이다. 명기열전>
그 덕에(?) 한자 공부를 더 열심히 했는지는 역시 기억에 없지만, 날마다 신문이 오기만을 기다려 소설란을 먼저 펼치는 습관은 신문을 읽는 즐거움 중 하나였던 것만은 분명했다. 이런 한자 공부로 인해 나는 일찌감치 마작이라는 도박의 세계에 눈을 뜨고(아버지는 연습 게임 상대로 우리들을 적극 활용하신 것 같다), 문학을 통해 합법적으로 에로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 같다.
계절이 바뀌어 옷장을 정리할 때마다 신문은 유용했다. 서랍장 바닥에 신문을 깔고, 그 위에 철 지난 옷들을 차곡차곡 넣고, 좀약을 사이사이에 넣는 일…. 나는 학교에서 가져오라는 폐품을 제일 많이 가져간 학생이었다. 명절 때 전을 부치기 위해 신문을 깔면 기름기가 어디로 가지 못한다. 돈 주고 보는 신문이었으니 신문에서 신문지로 될 때까지 알뜰하게 자신의 사이클을 살 게 해 주는 셈이었다.
지금은 출퇴근 길에 각종 신문들이 무상으로 쥐어진다. 그런데 금방 신문지가 된다. 지금은 매체의 융합시대, 미디어 융합이 그 중 가장 큰 변화라고 얘기한다. 디지털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필연적인 변화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사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세칭 얼리 어댑터와 트렌드 세터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아니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이미연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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