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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시민을 떠난 시민단체들

입력
2008.11.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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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연합 전ㆍ현직 간부 부정사건으로 시민단체들이 곤궁한 입장에 처했다. 시민 권익 신장과 건강한 사회 발전을 위해 시민 대표역을 자임해온 그들로선 쏟아지는 비판이 뼈아플 것이다. 존립의 기반이 흔들리는 위기감과 함께 이 위기 국면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도 클 것이다.

멀게는 1980년대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가깝게는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시민단체들은 늘 우리 사회 모든 이슈의 중심에 서 있었다. 권력과 금력의 횡포와 부정부패를 감시하고, 사회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제거ㆍ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여성, 환경, 빈곤, 아동, 도시서민, 농민, 노동자, 인권, 재벌개혁 등 과거 사회의 관심권 밖에 있던 문제들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시민들과 공유하고 대안도 제시했다. 그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시민단체는 왜 지금 비판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일까.

환경련 등의 일탈이 안겨준 실망

시민단체는 국민의정부 출범 이후 10년 동안 시민과 유리(遊離)된 채 계속 간극을 벌려왔다. 이념과 정치이슈 위주의 활동에 치우친 나머지 시민의 요구가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더 나아가 스스로 정치 세력화 내지 권력화했다. 참여연대만 해도 1994년 출범 후 2006년까지 전ㆍ현직 간부 150명이 청와대와 정부, 산하기관 및 위원회에 진출했다. 시민운동을 하면서 추구하던 이념과 가치의 실현을 위해 직접 정권에 몸담은 것이라고 강변할 수도 있겠으나, 시민들의 눈길은 결코 곱지 않았다.

시민단체는 과거보다 '풍요'를 누렸다. 정부 지원금이 지급됐고, 정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기업들은 앞 다퉈 후원금을 냈다. 기업에 노골적으로 손을 벌리는 시민단체들도 나타났다.'권력의 맛'을 알게 된 시민단체에 대해 실망한 시민들은 결국 우리 사회 전반의 보수화 분위기에 휩쓸리고 말았다.

실망과 좌절을 느끼게 한 참여정부와 시민단체를 동일시하는 현상까지 생겼고, 끝내는 환경련 간부 부정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이 시민단체의 도덕성마저 의심하는 상황이 초래됐다.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들이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할 권력과 밀월(蜜月)관계가 됨으로써 빚어진 결과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것일까.

이명박 정부 출범 후는 어떤가. 이젠 보수 성향 시민단체들이 정치 세력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진보단체들이 잘못 걸었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이다. 이미 관련 인사 상당수가 정치권과 권력 핵심에 진출하는 등 보수단체들은 세력 넓히기에 몰두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탄생의 주역이라는 점을 내세워 정부를 압박해 진보단체들에 대한 지원금을 중단케 하거나 기존 지원금 사용내역에 대한 감사를 실시토록 하는 등 이 사회에서 '진보의 싹'을 자르려는 시도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념 성향을 떠나 진보단체 주도의 시민운동이 남긴 유산을 분석ㆍ평가해 그들의 과오를 반면교사로 삼아도 모자랄 판에 마치 진보단체와의 권력 투쟁에 나선 듯한 모습이 영 볼썽 사납다. 과연 보수단체들이 몇 년 뒤 권력과 일정 거리를 두면서 도덕성도 갖춘 시민단체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다.

환경련 전ㆍ현직 간부 부정사건을 빌미로 시민단체의 존재 의미와 시민운동의 가치마저 부정하거나 폄하하려 해선 곤란하다. 진보든 보수든 시민단체는 국회와 언론이 커버할 수 없는 공간에서 '제5부'로서 해야 할 역할과 기능이 있다. 싫든 좋든 그것이 현실이다. 사회가 복잡ㆍ다기해질수록 시민단체의 필요성은 커지면 커졌지 줄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필요한 것은, 그것이 진보든 보수든, 시민단체에 대한 비난과 질타가 아니라 더 많은 관심과 참여와 지원이다.

권력화 경계하며 새 패러다임을

무엇보다 시민단체들이 냉엄한 과거 성찰과 냉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시민운동의 새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이념과 정치 이슈에만 함몰될 게 아니라 권력화의 가능성을 항상 경계하면서 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의제를 생산해 시민사회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 그것이 시민단체가 시민의 신뢰를 회복해 제자리를 찾게 되는 첩경이다.

황상진 논설위원 apri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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