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 영화계의 두 거목이 만났다. 영화배우 안성기(56)씨와 오구리 고헤이(小栗康平ㆍ63) 감독. 안씨는 수식어가 필요없는 국민배우, 오구리 감독은 한국 대중엔 비교적 낯선 이름이지만 1990년 ‘죽음의 가시’로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등을 수상한 세계적 거장이다.
1996년 안씨가 오구리 감독의 영화 ‘잠자는 남자’에 주연으로 출연하면서 인연을 맺은 두 사람은 10일 폐막하는 제5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집행위원장과 심사위원장을 각각 맡아 관계를 더욱 돈독히 다지고 있다.
오구리 감독은 “일을 떠나 인간적으로 맺어진 사이라 만나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고, 안씨는 “영화 일을 핑계 삼아 좋아하는 오구리 감독을 만날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화답했다.
영화배우와 감독의 만남이 뭐 특별하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국적이 한국과 일본으로 갈리고 더구나 12년 전 일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1990년대 중반은 당시 한국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야 된다”는 말을 할 정도로 현해탄이 차갑게 얼어붙었던 때다. 한일 영화 교류도 극도로 제한돼 한국의 대표적 배우가 일본인 역할을 맡아 일본영화에 출연한다는 게 사실 놀라웠던 시절이다.
오구리 감독은 “아주 특별한 역할이라 특별한 배우인 안성기씨에게 맡기고 싶었다. 그러나 한국의 톱 스타에게 일본인 역을 맡기고 제대로 된 대사도 안 준 채 잠만 재우면 한국인의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걱정도 참 많이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안씨는 “당시 상황에서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영화의 순수함과 예술성이 정치적인 면을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해 출연을 결정했고 열심히 누워 있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의 고민과 걱정과 노력을 자양분 삼은 ‘잠자는 남자’는 몬트리올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대상을 수상했다.
그간 세월이 흐른 만큼 한일 대중문화의 지형에도 지각변동이 있었다. 한국 정부는 1998년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빗장을 풀었고, 2000년대에는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한일 문화교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과 일본이 이제야 직접적으로 만날 수 있게 된 거죠. 지금 한류 거품이 꺼졌다고 하지만 차분한 교류가 오히려 정상적인 것이지요. 앞으로 영화, 나아가 문화 전체를 통해 서로 가까워지고 소통하고 이해하며 잘 지냈으면 좋겠습니다.”(안성기)
“정치나 경제적인 만남은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변합니다. 그러나 문화로서의 만남은 변함이 없고 더욱 깊은 관계를 맺습니다. 표면적으로 일본 내 ‘한국 알러지’가 사라졌다지만 한일 영화가 깊은 만남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문화로 서로 접하고 깊이 만나주기를 한일 젊은이들에게 바랍니다.”(오구리 고헤이)
한편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아트하우스 모모는 12일까지‘오구리 고헤이 감독 영화제’를 열고 ‘죽음의 가시’ 등 5편을 상영한다.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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