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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공공의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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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공공의 적'

입력
2008.11.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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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공공의 적> 에서 공공의 적은 누구인가. 강동서 강력계 강철중 형사가 죽이고 싶도록 혐오했던, '돈 때문에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를 일컫는 것이리라. 또 엑스트라로 등장해 알량한 위세를 마구 부리는 못된 검사도 그렇겠다. 하지만 강 형사가 직접 상대를 공공의 적이라고 선언한 대상은 그들이 아니었다.

경찰과 서민들 주변에 숨어 있다가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악덕 사채업자를 향해 강 형사는 "너희 같은 놈이 공공의 적"이라고 외쳤다. 그 패륜아에게 '악덕 사채업자보다 더 나쁜 공공의 적'이라는 이미지를 입힌 강우석 감독의 기지가 산뜻하다.

■한국일보 8일자 9면에 보도된 '공포의 사채업자' 행태를 보면 영화에 나온 악덕 사채업자는 오히려 순하게 묘사됐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암약하는 그들 가운데 훨씬 더 공포감을 주는 악독한 업자들이 널려 있음이 확인됐다. 그 패륜아 못지않은 '공공의 적'이다.

하지만 일선 형사들의 경험에 따르면 이번에 신문에 난 사채업자들은 '그래도 양반인 셈'이라고 한다. 대출금이 연체돼 있거나 신용불량자가 된 궁핍한 사람에게 현금을 덜컥 빌려준다니 받아내는 수법이 얼마나 혹독할지 짐작이 간다. 이런 현실을 방치한다면 정부도 '공공의 적'이 아닐 수 없다.

■현행 법(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연 49%를 넘는 이자를 받은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과하게 돼 있다. 또 등록을 않거나, 등록했더라도 폭행ㆍ협박ㆍ위계ㆍ위력을 사용해 빚을 독촉하면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규정돼 있다. 정부와 금융위원회가 스스로 사채시장의 평균이자율을 연 72.2%로 추정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법인가. 개인에게 연 800% 이상, 중소기업에게 연 600% 이상의 이자를 받다 경찰에 적발된 경우가 보도된 것만도 부지기수다.

■정부가 현재 구상하고 있는 개정안의 내용이 무의미하기는 마찬가지다. 연 30% 이하로 규제하고, 빚 독촉을 위해 채무자의 집이나 직장에 오래 머물거나 오후 9시 이후 오전 8시 이전엔 방문이나 전화를 못하게 한다는 수준이다. 이들의 행태와 피해자의 심정을 모른 척하지 않고서야 이런 한가한 안이 나올 리 없다. 최근엔 일본 야쿠자 자금 수조원까지 사채시장에 유입돼 있다. 경찰서나 관공서에 피해센터를 설치해 신고ㆍ접수ㆍ처리ㆍ단속을 민첩하게 진행하는 것이 '공공의 적'으로부터 서민을 구하는 일이다. 이런 현실적인 대책을 먼저 세워야 한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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