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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도 '불황 찬바람'/ "다음달에도 밥차 몰고 나올 수 있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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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급식소도 '불황 찬바람'/ "다음달에도 밥차 몰고 나올 수 있을지… "

입력
2008.11.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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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11시45분. 서울 용산역 역사(驛舍) 밑 차량기지의 한 귀퉁이 공터엔 화창한 하늘과 대비되게 남루한 행색의 사람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교회 겸 봉사단체인 '하나님의 집'이 정오부터 제공하는 무료 점심을 기다리는 노숙인들이다.

유연옥(40) 원장이 꼭두새벽부터 만든 250인분의 식사를 낡은 1톤 트럭에 싣고 도착했다. "잘 먹겠다" "고맙다"는 인사를 듣는둥 마는둥 그녀의 표정이 어둡다. 빈민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한 이래 13년 동안 사재를 털어가며 해온 일이지만 요즘 사정은 최악이다.

싼 식재료 위주로 식단을 바꿨는데도 한달 경비가 최소 700만 원. 급등한 물가 때문에 더는 끌어내릴 수 없다. 반면 교회와 개인 기부자가 보내오던 후원금은 2, 3년 새 200만 원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매달 적자가 500만 원이다.

지난해 유일한 재산이던 전셋집을 처분한 데 이어 유 원장은 제 손으로 세워 10년을 지켜온 교회의 보증금을 지난 6월에 빼냈다. "내가 미쳤나,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그렇게 마련한 3,000만 원이 바닥났다. 과연 다음달에도 밥차를 몰고 나올 수 있을까, 눈앞이 캄캄하다. 그녀의 타는 속도 모르고 한 식객이 야속하게 불평했다. "에이, 요즘 반찬 왜 이래?"

노숙인ㆍ독거노인 등 어려운 계층의 따뜻한 밥줄인 사설 무료급식 기관이 휘청대고 있다. 불황의 여파로 운영비의 큰 비중을 차지하던 후원금이 급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물가 상승으로 인해 식자재비와 연료비는 올라 운영난이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현재 서울에서 정기적으로 활동하는 사설 무료급식 기관은 40여 곳. 하루 제공하는 식사량이 1만 명 분을 넘는다. 적게 잡아도 3,500명 이상의 끼니를 매일 해결해주는 셈이다. 노숙인 쉼터, 노인복지회관 등 공공 급식시설의 한계를 보완해주는 이들 기관들이 여럿 문 닫게 되면 사회 취약 계층에게 상당한 타격을 줄 전망이다.

위기는 재정 기반이 취약한 기관부터 덮치고 있다. 회원들이 마련한 음식으로 매주 화요일 영등포역에서 저녁을 제공하던 '염창동 부녀회'는 작년 70명을 넘던 회원이 현재 38명으로 줄었다.

김복남 회장은 "회원 각자의 살림이 어려워지다보니 불우이웃을 챙길 여유가 없어졌다"며 "급식 기금 마련차 개최하는 바자회의 수익도 작년보다 20%쯤 감소했다"고 말했다. 종로 원각사 무료급식소도 월 600만 원 이상 들어오던 기부금이 두세 달 전부터 300만 원 이하로 떨어져 임대료 지급에 곤란을 겪고 있다.

진성 회원 비율이 10%로 급감한 신도림역 인근 '사랑의 복지회'는 최근 급식소가 있는 무료 임대 건물을 취수장 증설을 위해 비워달라는 구청 측 통보까지 받았다. 이사해 보려고도 했지만 보증금 마련이 어려운 데다 무료급식소 입주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 벌써 여덟 군데서 계약 거절을 당했다.

김인섭 원장은 "늘 점심 들러 오시던 어르신 30, 40명이 사정을 알고 부담 주기 싫다며 발길을 끊었다"며 "구청에서 착공 전까지라도 급식소 운영을 허가해주길 바랄 따름"이라고 말했다.

탄탄한 후원 구조를 갖춘 곳도 예외는 아니다. 무료급식의 대명사 격인 '다일공동체 밥퍼나눔운동본부'의 후원자 수는 1월에 비해 11% 감소했고, 후원금 규모는 월 3,000만 원 정도 줄었다.

노숙인 위주로 하루 세 끼 1,000~1,200명분 식사를 제공하는 영등포 광야교회의 정병창 집사는 "식재료 가격이 연초에 비해 30~40% 오르다보니 부담이 큰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겨울이다. 금융위기로 심화된 불황과 계절적 실업이 겹쳐 거리로 내몰리는 이들이 급증할 전망이다. 남기철 동덕여대 교수는 "금융위기, 일용직 시장 불황 여파가 내년 초 가시화되면 공식 통계만으로도 노숙인 수가 현재의 1.5~2배를 기록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통계상 서울 지역 노숙인 수는 3,000명 정도지만, 실제 노숙 위기 인구는 10배 이상이란 것이 남 교수의 추정이다.

현장에서는 이미 얼마 전부터 무료급식을 찾는 노숙인 수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고 전한다. 광야교회 측은 "저녁 수급자가 지난달부터 갑자기 100~150명 늘어 다들 놀라고 있다"고 말했다. 날씨가 쌀쌀해지는 늦가을부터 방문자가 감소하는 것이 상례인데 올해는 영 다르다는 것이다.

무료급식 운영자들은 세간의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 영등포 '토마스의 집'의 박경옥 총무는 "구청이나 급식소 주변에선 '공짜밥 주니까 멀쩡한 사람도 노숙자가 된다'며 못마땅해 하지만, 많은 노숙인이 알콜 중독, 정신 질환 등 복합적 문제를 겪고 있기 때문에 구호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정순둘 이화여대 교수는 "빈곤층 생계를 지탱하는 역할이 큰 만큼 사회 기부금이 이들 기관에 충분히 배분되도록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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