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첫 흑인 대통령을 갖게 될 것인가. 오늘은 그 역사적 선택의 날이다.
각종 여론조사가 예측하는 대로 검은 피부의 버락 오바마가 당선된다면, 그건 분명 놀라운 사건이다. 인종 차별의 완강한 현실이 그의 당선으로 당장 사라지진 않겠지만, 적어도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를 지켜보면서, 한국에서 자라는 검은 피부의 혼혈 아이들을 생각한다. 그 아이들에게도 오바마가 희망의 모델이 될 수 있을까. 한국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별로 그런 것 같지 않다. 유난히 단일민족을 강조해온 이 나라에서 혼혈은 그리 환영 받지 못하며, 특히 검은 피가 섞이면 멸시와 차별을 받기 쉬운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거리에서 길을 묻는 외국인에게 한국인들이 어떻게 대하는지 알아보는 TV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행인들은 대부분 백인에게는 친절했지만, 까무잡잡한 피부의 동남아인이나 흑인은 대충 대하거나 아예 멀찌감치 피해 갔다. 요즘은 세계화 시대에 걸맞게 젊은 여성들 사이에 외국인 남자 친구 사귀기가 유행이지만, 흑인 청년은 인기가 없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 흑인 손님을 태우고 공항으로 가던 택시 운전기사가 동료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말했다. "어, 연탄 한 장 싣고 공항 가고 있어." 마침 한국말을 잘 알고 있던 그 손님은 내릴 때 "연탄 한 장 값"이라며 돈을 냈다. 그가 느꼈을 모멸감이 얼마나 컸을까.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오바마는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하와이의 외가에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손에 컸다. 하와이나 그의 외가는 미국의 다른 어느 지역, 어떤 집안보다 인종적 편견에서 자유로운 편이지만, 그런 환경조차 그에게 완전한 방패가 돼주진 못했다. "아버지는 석탄처럼 시꺼멓고, 어머니는 우유처럼 허옇다"는 사실에 그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었다.
미국에서 흑인은 차별 받는 존재임을 처음 깨달은 것은 아홉 살 무렵이었다고 한다. 미국 잡지에서 피부색을 하얗게 만들려고 화학수술을 받은 흑인 노인이 실패한 수술로 전 재산을 날리고 후회 속에 사는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이다. 미국이 그런 곳이라고 말해주지 않은 어머니에 심한 배신감을 느낀 그는, 그 날 밤 벌거벗은 채 거울 앞에 서서 "내 주변에 있는 어른들은 다 미쳤다"고 읊조렸다고 한다.
한국에서 흑인 혼혈아는 한국전쟁 이후 많이 태어났다. 지금은 동남아 출신 노동자나 결혼이민자가 크게 늘면서, 그들에게서 난 아이들 중에 피부가 까만 아이들도 많다. 이 달치 한 잡지에서 전남 함평으로 시집 온 인도네시아인 며느리 마리아나씨의 이야기를 읽었다.
농부의 아내,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그는 아이를 낳을 때마다 걱정했다고 한다. "우리 아기 얼굴 까맣게 태어나면 어떡해. 밤마다 밤마다 기도했어요. 아기 얼굴 까맣지 말라고." 아이가 엄마 피부를 닮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그의 말에 가슴이 아프다. 한국에 시집 온 외국인 여성들의 아이들 중 상당수가 따돌림과 차별에 못 견뎌 엄마의 나라로 가거나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현실(11월 3일자 한국일보)을, 마리아나씨가 알면 얼마나 상심할까.
오바마는 다행히 흑인으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고 잘 자랐다. 한국에서 자라는 검은 피부의 아이들도 그리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피부색이 어떻든 모든 사람은, 특히 아이들은 모두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오미환 문화부차장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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