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탄생은 난데없이 이뤄진 것이 아니다. 그를 간절히 염원한 미국인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수백년간 응어리진 고통과 굴종의 역사는 스스로 흑인 대통령 탄생을 준비하고 있었다.
남북전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되고 1964년 민권법 제정으로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금지됐지만, 그렇다고 미국 사회에 인종갈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불과 40~50년 전까지만 해도 백인과 유색인종은 화장실조차 같이 쓰지 않았다.
당시의 흑백 분리 화장실은 지금도 워싱턴의 오래된 관공서 건물에 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흑인, 백인 가릴 것 없이 지금은 자유롭게 드나들지만, 누구도 옛날 유색인이 썼던 화장실은 잘 가려 하지 않는다. '백인 화장실'과 달리 비좁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언론들은 오바마의 탄생이 '미 건국 232년만에 이뤄낸 최초의 흑인혁명'이라고 대서특필하고 있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전만해도 오바마가 새 역사를 쓸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을 제치고 처음으로 흑인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리를 따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역사적'이라고 보았다.
오바마의 진짜 역사는 21개월 전 아이오와에서 열린 첫 민주당 경선에서 예상을 뒤엎고 힐러리를 압도했을 때 이미 만들어지고 있었다. 발밑까지 밀고 올라온 유권자의 강렬한 변화의 에너지를 제대로 읽고 이를 땅 위로 솟구치게 했다는 데 오바마의 예지력이 있다. 미국민의 12%밖에 되지 않는 흑인 오바마가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은 것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변화를 선택한 미국인이 인종의 벽을 무너뜨렸다"고 분석했다.
오바마가 이끈 미국의 통합은 유권자들의 선거혁명에서 시작됐다. 히스패닉, 흑인 등 소수인종은 물론이고, 백인들까지 백인 후보인 존 매케인 공화당 못지 않게 오바마에게 표를 던졌다.
인종의 벽만 무너진 게 아니었다. 전통적인 민주당 성향인 가톨릭, 유대교뿐 아니라 개신교, 복음주의자들도 전례 없는 비율로 오바마를 선택했다.고학력자, 부유층 유권자들도 오바마를 지지하는 저소득층 대열에 합류했다. 과거 공화당의 텃밭이었던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콜로라도 등 9개 주가 새롭게 파란색(민주당 상징색)으로 바뀌었다.
AP 통신은 "타 종교와 연합하는 새로운 종교의 흐름이 나타났다"며 "무슬림과 유대교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유에스에이투데이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민의 3분의 2가 '흑백 관계가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고 답했다.
오바마식 통합의 혁명이 사회저변으로 착근할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정책연구소(IPS)는 "오바마가 선거에서 인종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이 흑인문제를 해결하는 데 장애로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흑인혁명은 흑인임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흑인임을 떳떳하게 내보일 수 있을 때 완결된다는 것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
흑인을 강조하는 것이 선거에 유리하지 않다는 오바마의 판단에서 역으로 흑백 통합이 여전히 어려운 길임을 볼 수 있다. 흑인 민권운동가인 제시 잭슨 목사가 "오바마는 진정한 흑인이 아니다"라고 대선 기간 중 비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오바마 당선자는 승리에서"우리는 여기까지 왔으나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지금은 어떤 진보를 이룩해낼지 대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대다수의 미국인들에게 인종과 사회 통합을 향한 미국의 진정한 혁명은 이제부터라는 뜻으로 들렸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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