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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알아보는 우포늪 수호천사' 주영학 감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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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들도 알아보는 우포늪 수호천사' 주영학 감시원

입력
2008.11.10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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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경남 창녕 우포늪의 새벽. 어둠 덮인 수면 위로 희뿌옇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가르며 작은 쪽배 하나가 나타난다. 풀숲 사이를 이리저리 오가는 사공의 유연한 노질에, 늪은 비로소 깊은 잠에서 깨어 서서히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한 폭의 산수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광경은 새벽 어스름을 뚫고 늪을 찾은 수많은 이들의 카메라에 담겨 우포늪의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딱 한 컷으로 우포늪의 모든 것을 품어 보여주는 듯한 사진 속 주인공은, 우포 토박이 주영학(60)씨다. 그의 직함은 낙동강유역환경청 감시원이지만, 딱딱한 호칭보다는 '우포늪 지킴이'로 통한다.

늪 구석구석의 생태를 훤히 꿰고 있어 가방 끈 긴 새 박사, 늪 박사들도 절로 고개를 숙이는 그를 한결 추켜 '새들도 알아보는 우포늪 수호천사'로 부르기도 한다.

우포늪 일대에서 주씨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4일 막을 내린 제10차 람사르 총회를 계기로 국내외 손님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그의 인기는 더 치솟았다.

내ㆍ외신 기자에게 속칭 '그림이 되는' 늪의 비경을 콕콕 짚어주는 길라잡이이자 능숙한 모델로, 총회 VIP를 비롯한 탐방객들에게 늪의 역사와 생태를 친절히 일러주는 해설자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15년 만에 늪에서 가장 큰 수생식물인 가시연이 '꽃화분'처럼 만개해 우포늪을 뒤덮었고 정화기능이 뛰어난 물옥잠이 대군락을 이뤄 이미 총회의 성공을 예감했지요." 그는 어느새 입담 좋은 이야기꾼이 돼 람사르 총회 특수를 톡톡히 누린 우포늪 자랑을 이어간다.

"노랑부리저어새와 고니 등 겨울 철새들도 총회 기간에 맞추기라도 한 듯 예년보다 한 달여 빨리 우포늪을 찾아 '람사르 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해냈습니다." 겨울진객 철새들의 우포늪 행이 예년보다 빨라진 것은 극심한 가뭄 탓이라고 한다.

우포늪 인근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는 중학교를 마친 뒤 일을 찾아 대구로 갔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당시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자 가족을 둔 채 홀로 귀향, 유년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우포늪과 다시 친구를 맺었다.

어린 시절 늪에 얽힌 재미난 추억을 들려달라고 청하자, "눈 뜨면 보이는 게 늪이고, 늪에서 놀고, 모든 생활이 늘 늪과 함께 였는데, 별난 추억이 뭐 있겠나"라는 답이 돌아왔다. 우문에 현답이다.

국내 최대, 최고(最古)의 천연늪인 우포늪은 우포,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4개 늪으로 이뤄져 있다. 총 면적 231만㎡로, 여의도에 버금간다.

그는 오전 5시에 눈을 떠 '애마'나 다름없는 오토바이를 타고 40여분간 늪 전체를 한바퀴 휑하니 도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눈과 마음이 항상 늪을 향하고 있어 어느 한 구석에라도 이상이 생기면 단박에 알아본다.

"꽃 피는 봄의 우포가 환한 빛이라면 여름에는 녹색 수초융단으로 옷을 갈아입고, 황금빛 가을과 눈밭 위로 철새가 나는 겨울로 이어지는 우포의 사계는 원시 자연 그 자체이지요."

그 넓고 깊은 품에 안겨 '지킴이'로 살아온 열 두 해 세월은 주씨를 어느새 시인으로 만들었다. "내 이름 딴 3행시 한 번 들어보소. 주, 주인 손님 가릴 것 있나, 영, 영혼을 모아갈 대자연인데, 학, 학처럼 의연하게 우포늪과 함께 놀리라." 손수 가사 짓고 곡을 붙인 노래도 있다.

"'물안개 피는 우포늪/ 철새들은 짝을 지어 노래 하는 구나/ 물풀은 우포를 덮고 /대자연속에 우포늪 숨쉬는 소리가 들려오네." 문학에 소질이 있다고 추어주자, 그는 손사래를 치며 "늪을 바라보면 잡념도 번뇌도 사라지고 마음이 깨끗해져 나도 모르게 시를 짓고 노래를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선이 따로 없다.

요즘 주씨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물고기며 새알 등을 닥치는 대로 먹어치우는 물쥐 종류의 외래종 뉴트리아. "우포에서 이 놈을 대적할 천적은 나밖에 없다"는 그는 야행성이라 낮눈이 어두운 이 놈들을 방망이로 귀신같이 때려잡는다. 그러나 1년에 4차례 번식하고 한 번에 최고 11마리의 새끼를 낳는 왕성한 번식력은 당해낼 재간이 없단다.

방문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 처리도 골칫거리다. "우포늪은 흥청망청 먹고 노는 관광지가 아니라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생태의 보고(寶庫)임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주씨는 우포늪 보전을 위해 4개 늪을 돌아가며 사람의 출입을 막는 휴식년제를 도입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창녕=이동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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