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 어느 날이었다. 뉴욕의 <하퍼스 매거진> 이라는 잡지 편집장 빌 와식(Bill Wasik)은 사람들이 획일적으로 최신 유행만 따르는 걸 비꼬고 싶었다. 뉴욕 거리에는 당연히 개성에 따른 다양한 옷차림이 넘실대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여러 사람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하퍼스>
얼마 뒤 100명이 넘는 사람이 뉴욕의 한 백화점 9층에 나타났다. 그들은 매장 직원이 무엇을 찾느냐고 물어도 건성으로 대답하고 우 몰려다니더니 10분 뒤에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와식의 제의를 충실하게 이행한 셈이다. 잘 사는 나라에서 재미 삼아 심심풀이하듯이 순간적으로 모은 이런 군중을 플래시 몹(flash mob)이라고 한다. '순간군중'이라는 번역이 모범적이겠지만 '도깨비군중'쯤으로 옮기는 게 더 실감날 것이다.
'도깨비군중'이 모이는 이유
이런 도깨비 군중은 2006년 5월 유럽 동쪽의 작은 나라 벨로루시에서 정치 퍼포먼스 형태로 재현되었다. 벨로루시는 구소련이 무너지자 1991년에 독립한 나라다. 구소련 국가 대부분이 시장경제와 민주정치를 받아들였지만 벨로루시만은 대통령 알렉산더 루카셴코의 지도 아래 국영화를 고수하며 전시대적인 독재체제를 유지했다. 그는 2006년에 3선에 도전하여 85%의 지지를 받아 권좌를 지켰다.
높은 지지율은 사실은 억압의 산물이었다. 이런 독재에는 응당 온 국민이 항거해야 하지만 야당마저도 보복이 두려워 꼼짝달싹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by_mob이라는 이름으로 어떤 사람이 블로깅 소프트웨어인 라이브저널에 도깨비군중을 제안했다. 그냥 민스크시의 옥티아브르스카야 광장에 나와 아이스크림이나 먹자는 것이었다. 기대 이상으로 많은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들고 광장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이 몹은 사람이 많이 모여 성공한 것이 아니다. 순진한 군중이 아니라 벨로루시 경찰이 이 몹의 정치적 효과를 극도로 높이는 데 이바지했다. 사전에 정보를 입수한 경찰이 광장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을 다짜고짜 연행했다. 그러자 광장에 모인 군중은 휴대폰이나 디지털 사진기로 그 광경을 찍어 여러 온라인 사이트에 올렸다. 벨로루시 경찰의 폭압적인 이미지는 민스크를 넘어 벨로루시 전역으로, 유럽으로, 그리고 세계로 퍼져갔다.
아이스크림 몹은 단발로 끝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유사한 몹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 해 가을에는 '서로 미소 지으며 옥티아브르스카야 광장을 거닐자'는 몹도 성공을 거두었다. 경찰은 웃으며 광장을 걷는 어떤 사람 주머니에서 주머니칼을 발견하고 무기소지 혐의로 체포했다. 그렇게 하여 경찰은 다시 벨로루시의 새로운 해학을 창작했다.
이런 몹이 성공할 조건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 라는 재미있는 표제로 번역된의 저자 클레이 서키(Clay Shirky)는 좋은 시사를 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사회적 인식에는 세 단계가 있다. 끌리고>
1단계는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다. 2단계는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아는 단계다. 3단계는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다. 모두가 무엇인가를 아는 단계에 몹이 생기고, 모두가 알고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아는 단계라면 몹은 대성공을 거둘 것이다.
그 원인을 알아 해소 노력을
몹이 발생하면 정부는 무엇을 해야 할까? 벨로루시처럼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을 모조리 잡아 가두면 될까? 군중 호주머니를 뒤져 주머니칼을 찾아내면 될까? 천만의 말씀이다. 모두가 아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 그 소지를 원천적으로 해소하는 길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그걸 거부하는 것은 재앙을 예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몹은 무서운 법이 아니라 따스한 정치로 다스려야 한다. 이거야말로 벨로루시법칙이자 서울법칙이기도 하다.
김민환 고려대 언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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