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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헌법의 수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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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헌법의 수호자'

입력
2008.11.10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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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독일에서 당대의 법학자 사이에 '헌법 수호자' 논쟁이 벌어졌다. 독일 태생의 칼 슈미트는 "국회와 법원은 헌법 수호자 노릇을 다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스트리아 출신 유대인으로 쾰른 대에서 가르치던 한스 켈젠은 "대통령과 의회뿐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헌법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맞섰다.

슈미트의 논리는 히틀러 통치의 정당성을 뒷받침했고, 이 때문에 그는 뒷날 연합군에 체포돼 1년간 연금되는 대가를 치렀다. 한편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켈젠은 특히 서독을 비롯한 유럽의 헌법재판소 모델을 정립한 업적이 높이 평가된다.

■헌법 교과서 내용을 새삼 덧붙여 소개한 것은 국회에서 갑자기 헌법재판소를 둘러싸고 '헌정 파괴' 논란이 터진 때문이다. 발단은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종합부동산세 위헌심판에 관한 여당의원의 질문에 "헌재와 접촉했지만 결론은 확실히 전망할 수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는 의혹을 부를 만한 '접촉' 표현에 대해 "세제실장 등이 헌재 연구관을 만나 의견서를 제출하고 정부 입장을 설명한 것"이라고 뒤늦게 해명했다. 그러나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은 일제히 "헌재에 압력을 행사한 헌정 파괴 행위"라고 규탄, 파란이 일었다.

■소동은 여야가 합동진상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해 일단 진정된 듯하다. 헌재가 공개적으로 지적했듯, '매우 부적절한 용어로 헌재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에 우려를 자아낼 수 있는 사태를 초래한' 강 장관의 몽매함이 우선 한심하다. 그러나 더욱 개탄스러운 것은 야당이 하나같이 헌재가 심리 또는 결정 내용을 정부에 미리 알려준 것으로 단정하고 나선 행태다. 민주당이 대뜸 '헌정유린 규탄대회'를 연 것은 그렇다 치고, 대법관 출신이 이끄는 자유선진당까지 헌재 소장의 해명을 요구한 것은 정말 놀랄 일이다.

■헌재 결정이 어찌 나올지, '분위기'를 은밀히 염탐하는 일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몇 십년 전 독재 시절이라면 또 모를까, 헌재가 정부 압력을 받거나 결정 내용을 누설하는 일은 상상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황당한 발언을 빌미로 헌재의 권위와 신뢰를 숫제 짓밟는 행태야말로 무지몽매하기 짝이 없는 '헌정 유린' 행위다. 우리 정치사회 세력은 대통령 탄핵재판과 신행정수도 위헌결정 때 헌재와 헌법재판의 고유한 역할, 헌법적 가치를 부정하는 짓을 일삼았다. 이런 무리가 '헌법 수호'를 떠드는 것은 파렴치하다.

강병태 수석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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