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의 당선이 확정되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가 예측한 대로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만약 오바마가 패배한다면 타기할 만한 인종적 편견 때문일 것이라는 가정도 있었지만 그것은 괜한 기우로 끝났다. 백인 어머니와 케냐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흑인으로 자기 정체성을 정립한 오바마를 선택함으로써 미국은 인종적 오만의 나라란 잠재적 비판의 굴레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그것은 미국의 역사를 넘어서 세계사적 사건이라 불러 마땅하다.
물론 오바마 당선의 의미는 인종 문제를 훌쩍 넘어선다. 지지도가 25%에 지나지 않는다는 대통령을 낸 정당과 대결한 오바마는 극히 유리한 상황에서 선거를 치렀다. 1929년 대공황의 악몽을 되살리게 하는 신용위기와 경제위기는 변화를 외치는 젊은 오바마의 웅변에 거역할 길 없는 박진감과 설득력을 부여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비교적 냉랭했을 많은 백인 노동자들을 열렬한 오바마 지지자로 만든 것도 경제위기에 따른 불안감이었다.
전쟁의 시궁창도 경제의 수렁 못지않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군사작전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파키스탄 일부 지역에서의 작전도 이미 비밀은 아니고 이란과의 긴장 고조도 만만치 않은 난제로 등장했다. 1조 달러에 달하는 이라크 전비 통계만으로도 미국 유권자들은 기가 찰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퇴역 사성장군이자 부시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파월의 오바마 지지 선언은 아주 극적이었다. 안보문제에 취약하다는 오바마에 대한 일부의 의구심을 불식하는 데 그보다 더 적합한 인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의 당선이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실추하는 미국의 국제적 성가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인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그러나 그것은 인종과 가족배경상의 불리점을 안고 삶을 출발한 오바마의 개인적 성공담으로 그치지 않는다. 대학을 나온 직후 시카고 흑인 빈민굴에서 구조 활동에 종사한 것을 포함해 그의 개인사가 감동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흑인의 사회적 지위 상승이라는 커다란 역사적 맥락 속에 놓고 볼 때 그것은 사소한 삽화에 지나지 않는다.
1960년 2월 노스캐롤라이나 그린즈버로 소재 흑인 농업기술대학의 학생 네 명이 잡화점에 들어가 물건을 구입한 후 카운터에 앉아서 커피를 시켰다. 식당에선 흑인인 그들에게 커피를 갖다 주지 않았고 그들은 상점이 문을 닫을 때까지 계속 눌러 앉았다. 이것이 곧 남부 전역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되어 나간 흑인 연좌투쟁의 시작이다
. 그 이전에 마틴 루터 킹이 등장했고 1957년엔 민권법안이 의회를 통과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본격적인 흑인혁명이 시작된 것은 1960년대로 1863년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포한지 근 100년 만의 일이었다. 다시 반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는 마침내 흑인 대통령의 등장을 보게 되었다. 역사는 이렇게 더디나 착실하게 전진한다.
1820년대에 헤겔은 미국이 "낡은 유럽의 잡동사니 헛간에 멀미가 난 사람들에게 욕망의 땅이며 미래의 땅"이라고 말했다. 조국인 러시아를 버리고 자진 망명길에 오른 백만장자 혁명가 알렉산드르 게르첸은 1840년대 말에 미국과 러시아가 인류의 횃불을 이어갈 활기찬 젊은 나라라고 칭송했다. 괴테가 미국 이민을 진지하게 고려한 적이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많은 유럽인들에게 미국은 희망과 부와 가능성으로 가득 찬 신세계였다. 행복의 약속이었다.
미국은 그러한 약속을 지켰을까? 해답은 부분적인 긍정과 부분적인 부정으로 귀결될 것이다. 어느 나라의 역사에나 양지가 있고 음지가 있다. 빛이 있고 그늘이 있다. 조지 워싱턴과 링컨과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나라인 미국은 헤겔과 게르첸의 기대에 부분적으로 부응했다.
오바마의 당선도 긍정적 답변에 속할 것이다. 그러나 신대륙의 원주민과 흑인 노예의 역사는 문명의 탈을 쓴 야만의 역사이기도 하다. 지금 미국은 역사를 새로 써야 하는 전환점에 와 있다. 오바마의 미국은 과연 어떤 역사를 쓰게 될 것인가? 오바마 자신의 개인사처럼 감동적인 성공담으로 이어질 것인가?
오바마의 선택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갖게 된 미국은 적지 않은 난제를 떠안고 있다. 서른이 넘은 자를 믿지 말라는 것은 1960년대 미국 히피들의 구호였고 많은 청년들의 공감을 샀다.
그러나 삶과 세상은 젊은이들의 축제 장소가 아니다. 많은 위험과 난제가 신중하고 지혜로운 해결을 기다리고 있다. "대담한 지휘관보다도 신중한 지휘관'이라는 대사가 그리스 비극에 보인다. 그것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이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변화해야 한다는 구호가 아니다. 지혜로운 변화의 실현이 중요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유종호 문학평론가ㆍ전 연세대 석좌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