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당선자는 "어린 시절 주변 사람들이 모두 구르는 돌(rolling stones)과 같았다"고 말했다. 머물다 떠나기를 반복하는 가족과 친지 속에서 부유했던 그는 아내 미셸 오바마를 만나면서 비로소 심리적 안정을 찾았다고 한다. "미셸은 나에게 바위 같은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따뜻한 안식처이자 든든한 조력자다.
미셸은 양가 모두 노예의 후손으로 시카고의 흑인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혼혈인 오바마 당선자보다 더 순수한 '미국 흑인'으로 선거 운동 과정에서 놀라운 청중 동원 능력을 보여 '흑진주'로 불렸다. 프린스턴대-하버드 로스쿨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는 1989년 오바마가 시카고의 시들리 오스틴 로펌에 인턴으로 왔을 때 친해져 92년 10월 결혼했다. 두 사람은 말리아(10) 사샤(7) 두 딸을 두고 있다.
미셸은 다소 이상적인 오바마에게 현실감각을 심어주었다. 오바마가 대선 출마를 고려하자 미셸은 선거자금 모금 방안과 캠페인 전략을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남편이 구체적인 계획을 내놓자 그때부터는 직장까지 그만두며 돕기 시작했다. 이때 남편에게 내 건 조건은 금연이었다.
달변의 미셸은 원고도 없이 수십 분 간 자유 연설을 능숙하게 할 수 있다. 하지만 설화(舌禍)에 시달리기도 했다. 2월에는 "성인이 되고 나서 처음 미국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말했고 힐러리가 민주당 후보가 되면 지지하겠느냐는 질문에 "생각해보겠다"고 말해 보수언론의 비난을 받았다.
강하고 똑똑한 퍼스트레이디상은 힐러리 클린턴을 떠올리게 한다. 워싱턴포스트도 "빌 클린턴처럼 오바마 역시 아버지의 부재 속에 강한 여성들에게 둘러싸여 자랐고 아내 역시 강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목소리 큰 아내가 선거운동에 해가 될 수 있다는 조언에 따라 미셸은 일주일에 이틀만 선거운동에 나서고 나머지 시간은 두 딸을 돌보며 헌신적인 이미지를 심으려 노력했다.
뛰어난 패션 감각으로 유명한 미셸은 제2의 재클린 케네디로도 불리며 대중적 인기를 받고 있다. 2007년 '베니티페어' 선정 베스트 드레서 10인에 올랐으며 같은 해 '02138'지는 그녀를 영향력 있는 하버드 동문 100인 가운데 58위로 선정됐다.
최지향 기자 jhchoi@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