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을 비롯 여러 금융기관의 최근 수년 간 모토는 ‘빚 지고 사세요’였다. 은행들은 신용도나 상환능력보다는 담보를 기준으로 주택담보대출을 크게 늘렸고, 가계의 대출 여력이 감소하자 다음으로는 올해 상반기까지 중소기업 대출을 늘리는 데 힘을 기울였다.
펀드 열풍으로 예금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은행채, 양도성예금증서(CD) 등을 발행해 대출을 지나치게 늘린 결과는 뼈아프다.
현재 가계와 중소기업의 신용 상태는 전보다 나빠졌다. 크게 높아졌던 금융권의 외환위기는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체결로 한숨 돌렸지만 우리 경제 안에 내재한 신용 위험은 오히려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中企, 33.5%가 신용 위험…건설업 연체율 1% 육박 최고
중소기업 대출의 신용위험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은이 ‘중소기업 신용등급 DB’를 활용해 10만1,839개 업체의 신용위험을 분석한 결과 6월 말 현재 신용등급이 7~10등급인 투기등급 업체는 전체의 33.5%로 지난해 말보다 5.4%포인트나 늘었다. 반면 신용등급 1~4급인 우량등급 업체는 24.1%로 6.3%포인트 줄었다.
또 영업이익을 순금융비용(금융비용에서 이자수익을 뺀 것)으로 나눈 ‘순이자보상비율’이 100%에 못 미치는 중소기업이 올해 상반기 40.4%에 달해, 지난해 말 37.6%보다 높아졌다. 순이자보상비율이 100%보다 낮으면 사업에서 번 돈으로 이자 감당하기에도 허덕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 기간 동안 금융기관들은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늘렸다. 6월 말 중소기업 한 업체 당 대출액은 19억4,000만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2억3,000만원, 비율로는 13.5% 증가했다. 연체율은 6월 말 현재 0.83%로 지난해 말보다 0.14%포인트 상승했다. 업종별로는 건설업이 0.97%로 가장 높았고 제조업(0.91%), 도소매업(0.83%) 순이었다.
중기 대출의 신용위험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한은은 올해 취급된 대출의 연체율 곡선이 2006년과 지난해 취급분의 연체율 곡선을 상회하고 있어 향후 신규 연체가 늘면서 신용위험이 상승할 것으로 분석했다.
부문별로는 건설ㆍ부동산업을 가장 우려되는 업종으로 꼽았다. 건설ㆍ부동산업 대출의 평균 만기는 20개월 내외로 기타 중기대출(13개월 내외)보다 장기인 반면 지난해 취급된 대출액의 상당액이 만기 도래하지 않아 연체율 상승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실제로 중소 건설업체의 은행 대출 연체율은 지난해 말 1.46%에서 올 6월 말 2.26%로 뛰었다. 특히 올 1월부터 9월까지 부도난 종합건설업체와 전문건설업체는 총 251개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6% 급증해 우려를 키우고 있다.
가계, 금융부채 금증…가처분소득 10분의 1을 이자 상환
가계 부문의 채무 상환 능력도 나빠지고 있다. 2일 한국은행이 펴낸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가처분소득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올해 6월 말 기준 1.53배로 2007년 말 1.48배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이 수치는 2004년 1.27배, 2005년 1.35배, 2006년 1.43배로 해마다 늘고 있다. 소득보다 빚이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는 뜻이다. 미국(1.32배)이나 일본(1.11배)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가계의 금융자산 대비 금융부채 비율도 2007년 말 43.3%에서 올해 6월 말 45%로 증가해 미국(32.2%), 일본(22.5%)보다 높았다.
시중금리 상승으로 이자부담도 늘어나 가계 가처분소득 대비 이자지급 비율은 지난해 말 9.4%에서 올해 6월 말 9.8%로 상승했다.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소득의 10분의 1을 이자 갚는 데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비율 역시 2004년 6.3%에서 2005년 7.8%, 2006년 9.3% 등으로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특히 국민, 우리, 신한, 하나, SC제일은행, 농협 등 6개 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실제로 받은 가계를 대상으로 원리금상환부담률을 산출한 결과 지난해 말 20.2%에서 올해 6월 말 20.7%로 높아졌다.
가계의 연간 가처분소득이 1,000만원일 때 207만원을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한은은 채무상환 능력 악화에도 불구하고 가계의 신용위험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했다. 2008년 8월말 가계대출 연체율은 0.7%로 1%를 밑돌고 있으며 신용카드 연체율도 2%대 초반에서 하향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주택가격이 90년대 이후 가장 큰 폭인 20% 가량 급락하고 고정이하여신비율이 6.3%까지 상승한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한 손실액은 4조8,000억원이며 이는 지난해 일반은행의 당기순이익(10조2,000억원)의 절반 정도에 그쳐 은행의 경영 안정성을 크게 훼손하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했다.
은행, 3분기 순익 작년보다 30%대 급감…건전성도 악화
이처럼 가계와 중소기업에 대출해 준 자산의 부실 위험이 크게 높아지는 상황에서 시중은행들의 수익성과 건전성도 악화하고 있다. 이 같은 우려는 3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30, 31일 3분기 실적을 발표한 국민은행, 신한은행, 하나은행의 3분기 이익은 전문가들의 예상치를 크게 밑돌며 급감했고, 연체율은 높아진 반면 순이자마진(NIM)과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은 떨어지는 등 수익성과 건전성이 크게 악화했다.
국민은행은 3분기 순이익이 일회성 이익을 포함하고도 5,533억원으로 전년 동기비 28.6% 감소했고 신한은행의 순이익은 전년 동기비 32.2%나 하락한 2,143억원에 그쳤다.
은행의 수익창출 능력을 알려주는 지표인 NIM은 국민은행이 2.98%로 작년 3분기 3.47%에서 뚝 떨어졌고 하나은행은 2.27%에서 2.05%로 내려갔으며 신한은행은 카드부문을 포함해 3.92%에서 3.55%로 하락했다.
연체율은 일제히 상승했다. 총연체율은 국민은행이 0.68%, 신한은행이 0.69%로 전분기에 비해 0.11%포인트, 0.02%포인트 상승했으며 하나은행은 0.88%로 0.1%포인트 올랐다.
충당금 전입액은 국민은행이 3,418억원으로 전분기의 2,364억원에 비해 크게 늘었고 신한은행은 2,980억원으로 828억원에 비해 3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자본 건전성을 측정하는 BIS비율은 통상 10%를 넘어야 우량 은행으로 평가되지만, 국민은행의 경우 지주사 전환에 따른 자사주 매입 때문에 2분기 12.45%에서 9.76%로 떨어졌다. 신한은행은 12.50%에서 11.90%로 떨어졌다..
구용욱 대우증권 연구위원은 “경기 둔화로 대손충당금이 늘어나고 주가 폭락으로 펀드 판매 수수료 이익이 줄어들어 은행 실적이 예상보다 부진했다”면서 “실적과 건전성 악화에 부담을 느낀 은행들이 대출을 줄이면 실물경제 침체를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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