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하형 장편소설 '조립식 보리수나무'
"이 소설은 논리적이고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건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자본과 과학기술의 결합으로 날개달린 신인류 조인(鳥人)이 등장한다는 등단작 <키메라의 아침> (2004)을 펴냈던 조하형(38)씨는 두번째 장편 <조립식 보리수나무> 를 이렇게 알듯말듯한 말로 요약했다. 조립식> 키메라의>
그는 '얼굴 없는 작가'다. 자신이 낸 책에도, 장편 공모에서 수상했을 때도 그는 사진을 찍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는 대면, 전화통화, 사진촬영을 모두 부담스럽다며 거절했다. 인터뷰는 이메일로 이뤄졌다.
<조립식 보리수나무> 는 그의 전작에 이은 '디스토피아 소설'이라 할 수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SF적 상상력을 발휘하며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두 번의 재난을 교차시킨다. 조립식>
짝수장에는 낙산사를 태우고 부산까지 번지는 화재를, 홀수장에는 한반도 전역을 사막으로 만들어버릴 듯한 기세로 쏟아지는 토우(土雨)다. 대중적 서사에 기대고 있지만, 그가 천착하는 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는 "현대 세계란 도무지 알 수 없는 세계"라고 정의했다. 소설은 그 의문에 대한 해답 찾기로 읽힌다. 등장인물들은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재난 앞에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는다.
소설에서 "시공간 전체가 불탈 때, 어떻게 해야 불타지 않겠는가?"라는 물음에 한 명의 주인공은 자살을, 다른 한 명의 주인공은 삶을 택한다. 조씨는 "소설은 순환합니다. 진정으로 깨달은 자는 아무도 있지 않습니다.
소설은 말해질 수도 없고 씌어질 수도 없는 바깥을 가리키며, 돌고 돕니다. 출구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디에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불가(佛家)적 사유다.
그의 소설은 합리주의와 문명을 비판하는 지적인 작업, 혹은 재난이 일상화된 후기자본주의 시대에 어떻게 거기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묻는 작업이라는 말을 듣는다. 아이디어는 넘치지만 큰 주제를 물고 늘어지는 신예 작가들이 드문 현실에서, 문제작가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기대도 덧붙여진다.
"평화로워지는 것에 관해 생각합니다. 당신과 나, 모두 말입니다"라고 자신이 품고 있는 소설적 화두를 설명한 조씨는 "세번째 소설을 쓴다면, 쓸 수 있다면, 아마도, '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라고 전했다.
■ 작품 속 이 구절
"이철민은 추락인지 비상인지 알 수 없는 충격 속에서, 피부-몸과 근육-몸, 골격-몸, 순환-몸, 도관-몸, 신경-몸이 해체되고 덩어리로, 입자로, 부서져 내리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어두운 건지 망막이 파열된 건지, 고요한 건지 고막이 터진 건지, … 감각들의 파탄 속에서, 어느 순간, 모래더미 형태로 쌓여 있던 몸이, 붕괴되고, 떠오르며, 산산이 흩어지는, 초현실적 감각 하나를 얻었다 - 무너지는 천장, 깨지는 유리창에 깔리면서. 추락의 바닥이었다."(224쪽)
"인식은 다시, 항상, 하나의 세계를 구성하는 일이었고, 인식은 다시, 그 구성된 세계에서 재귀적으로 조립되는 것이었다 : 상호의존하는 인지적 순환."(259쪽)
"너의 하늘이 무너진 곳, 그곳, 너의 땅이 꺼진 곳, 그곳, 그 낯선 무덤에서 노래할 수 있겠는가?"(338쪽)
■ 프로필
1970년 부산 출생. 고려대 경영학과 중퇴. 200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화평론 '상처는 터지지만 아프지 않다' 당선. 2004년 제3회 '문학ㆍ판' 신인작가 장편 공모에 '키메라의 아침' 당선.
조씨는 개인 약력의 공개를 원하지 않았다. "소설 쓰기는 공적인 행위인데, 혹시 은둔벽이라도 있느냐"는 물음에 그는 "취향이 다르니까. 이해해주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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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회 한국일보문학상 본심 후보작가 인터뷰 <5·끝>
■ 황정은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
"굳이 말하라면 사람이 산다는 것이 왜 이렇게 쓸쓸한지가 제 소설의 주제가 되겠지요. 늘 인간이라는 단자(單子), 존재의 그 조그만 조각의 쓸쓸함에 대해 생각해요."
황정은(32)씨의 첫 소설집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 열차> 는 인간의 쓸쓸함에 대한 우화로 가득하다. 부끄러움이나 초라함을 느낄 때마다 모자로 변하는 아버지, 함께 살던 외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홀로된 채 죽은 이와 대화하는 젊은이, 자살 사이트에 접속하는 정육점 직원 등이 그의 소설에 서식한다. 일곱시>
황씨는 그 쓸쓸함을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듯 순진한 소녀의 어투로 전달한다. 쓸쓸함과 순진함 사이의 거리가 주는 어떤 섬?함에 더해, 그가 시도하는 '변신'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식의 환상은 그를 새로운 감성의 작가로 자리매김 시켰다.
특히 모자로 변신하는 아버지, 오뚝이로 변하는 아내 등은 이른바 '황정은표 변신 서사'라 부를 만하다. "어중간하게 상상하면 눈치를 챌 것 같아서 그래요. 이만큼 가 봤으니. 아예 더 가버리자는 심정으로 상상력을 발휘하지요"라고 그는 말한다.
이런 황씨의 소설의 배후에는 '폭력'에 대한 성찰이 깔려있다. 폭력이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상상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엉덩이를 두드려 맞는 아들, 뺨을 맞는 딸, 머리를 발로 걷어차는 외삼촌 같은 인물들이 그의 소설 속에 배치돼 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약간의 정서적ㆍ육체적 폭력을 겪었던 제 경험을 결국 감출 수는 없는 것이겠죠"라는 그는 "제가 초기에 썼던 소설들에는,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위악적으로 폭력을 묘사하고 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폭력 그 자체보다는 폭력이 발생하는 맥락에 대해 쓰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황씨의 소설은 개인적 아픔, 체험을 객관화하는 과정에서 기존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동화적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그가 어떤 세계를 걸어갈지는 작가 자신도 아직 모른다.
"저의 방식을 새롭다고 말하는데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요. 이런 식은 어떨까, 저런 식은 어떨까, 이야기하는 방식에 대해 아직도 고민하고 있지요. 어쨌든 눈덩이 굴러가듯 저절로 굴러가는 소설을 쓸 겁니다."
■ 작품 속 이 구절
"동물원은 가장 인간적인 영역이잖아.
그런가.
우리를 만들어서 동물들을 넣어두고 관람료를 받는 일 같은 것을 인간 외에 어떤 동물이 생각해내겠어. 동물을 관리하는 인간이 있고 동물을 관람하는 인간이 있고 동물을 관람하는 인간들을 관리하는 인간이 있고 그런 인간들에게 통제되고 영향 받는 소수의 동물들이 있는 곳. 압도적인 인간의 영역, 그게 동물원이야. 동물원의 동물들이 어딘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야. 그런 걸 보고 싶었어. 사람들에게 통제되고 영향 받는 동물들이 사람들이 붙인 이름이 적힌 우리 안에서 온순하게 살고 있는 것. 그런 걸 보고 싶었다고. 아니야.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먹고 싶었어. 그런 경험을.
먹고 싶었다고?
응. 파씨는 새끼손톱을 잘라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싶었어. 그런 경험을."(85쪽)
■ 프로필
1976년 서울 출생. 인천대 불문과 중퇴. 200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단편 '마더' 당선.
햇빛이 잘 들고 벽에 나비 그림이 걸려있는 옥탑방에서 작업. 이명 현상 때문에 왼쪽 귀를 휴지로 막고 영화를 봄. 잠 자는 행위를 중시. 길을 가다가 벽에 붙은 구인광고 등의 문장을 골똘히 쳐다보며 상상하기를 즐겨한다. 단 것을 싫어하고 복숭아를 먹을 때 피부와 같은 껍질을 즐겨 먹음. 최근 천체물리학에 관심을 갖고 있음.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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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일보문학상과 나/ 김원일<제12회ㆍ1979년 수상>제12회ㆍ1979년>
한국일보문학상 받기가 1979년이니 달반이 지나면 30년 전이다. 한 생애의 절반이 흘러버린 뒤, 까마득한 저 건너 세월을 생각하니 '그땐 참 젊었었지'라는 감회부터 먼저 든다.
수상작인 중편소설 <도요새에 관한 명상> 은 출판사에서 열심히 밥벌이하던 30대 중반에 썼다. 아동물을 내던 출판사였는데 당시 학생용 백과사전을 편찬하고 있었다. 도요새에>
그러다보니 해외 시사사전을 더러 활용하던 중, 라이프 지 사진기자 유진 스미드 부부가 일본 구마모토현 미나마타시의 신니치 질소비료공장의 환경오염으로 발생한 속칭 '미나마타병'으로 고통받는 처참한 주민 모습을 촬영한 사진을 보게 되었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 우리나라도 공업화에 따른 환경오염이 조만간 문제화될 것임을 알고 이 소설에 착수했는데 그때까지도 경제성장의 그늘에 가려 환경공해 문제는 사회적 이슈가 되지 못했다.
공업단지 발생의 중금속폐수 문제, 실향민을 통한 남북문제, 재적당한 운동권학생의 고뇌, 배금사상이 팽창일로인 오늘의 시장주의 문제를 한정된 분량 속에 우겨넣으려 과욕을 부렸으니 그게 바로 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어, 그때가 돌이켜 보인다. 이 소설 발표 당시가 유신정권 말기의 공안정국이라 검열이 심했다(1979년 10월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이 있었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으로 제적당한 운동권학생이 공단의 공해 비리를 파헤치며 도요새를 비유해 자유의 비상을 꿈꾼다는 게 수상하다(?)며 안기부가 내사중이니 조심하라는 귀띔을 받기도 했는데, 다행히 상을 받게 되어 신문에 기사가 크게 실리자 유야무야되어, 상 덕을 본 셈이다.
연륜을 더해가는 지금도 그렇지만 한국일보문학상은 다른 어떤 문학상보다 신진작가의 역량을 알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뿐더러 작가에게도, 이제 내 세계를 떳떳이 펼쳐나가도 되겠구나 하는 자신감을 준다. 나 역시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은 그래서 소중하고, 이 작품은 내가 쓴 소설 중에 괜찮은 작품이란 말을 지금도 듣는다.
김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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