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규
여자하고 남자하고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있다네
하루 종일 아무 짓도 안 하고
물미역 같은
서로의 마음 안쪽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다네
너무 맑아서
바닷속 깊이를 모르는
이곳 연인들은 저렇게
가까이 있는 손을 잡는 데만
평생이 걸린다네
아니네, 함께 앉아
저렇게 수평선만 바라보아도
그 먼 바다에서는
멸치떼 같은 아이들이 태어나
떼지어 떼지어 몰려다닌다네
초기의 정신병원들은 모두 바닷가에 있었다고 한다. 상처받은 정신을 바다가 치유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효과가 없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이 사납게 일렁일 때 바닷가에 한나절쯤만 동그마니 앉아 있어 보라. 들고 나는 파도의 리듬을 따라 몸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호흡을 타고 공명하면서, 어느 한 순간 들끓던 소음들은 모두 사라지고 내면 가득 거대한 정적이 자리잡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거대한 정적이 바로 너무 깊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청정해역이다.
이 청정해역은 무엇인가 쓸모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때 찾아온다. 같이 간 이와 함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어떤 유용한 말을 나누거나 기념이 될 만한 사진을 찍으며 수선을 떠는 행위를 내던지고, 그저 하염없이 수평선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마음 안쪽을 쓰다듬는 물결이 밀려오게 된다.
바라만 보아도 ‘멸치떼 같은 아이들이 태어나/ 떼지어 떼지어 몰려다’니는 그 먼 바다가 두고 온 내 사랑이다. ‘아아’ 그 바다 앞에선 하릴없는 감탄사만 터져나온다. 원시음에 가까운 모음. ‘바다’는 자음을 떼어버린 뒤의 나머지 모음과 같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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