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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청정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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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로 여는 아침] 청정해역

입력
2008.11.10 01:07
0 0

이덕규

여자하고 남자하고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있다네

하루 종일 아무 짓도 안 하고

물미역 같은

서로의 마음 안쪽을

하염없이 쓰다듬고 있다네

너무 맑아서

바닷속 깊이를 모르는

이곳 연인들은 저렇게

가까이 있는 손을 잡는 데만

평생이 걸린다네

아니네, 함께 앉아

저렇게 수평선만 바라보아도

그 먼 바다에서는

멸치떼 같은 아이들이 태어나

떼지어 떼지어 몰려다닌다네

초기의 정신병원들은 모두 바닷가에 있었다고 한다. 상처받은 정신을 바다가 치유해 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인데, 실제로 효과가 없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이 사납게 일렁일 때 바닷가에 한나절쯤만 동그마니 앉아 있어 보라. 들고 나는 파도의 리듬을 따라 몸과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호흡을 타고 공명하면서, 어느 한 순간 들끓던 소음들은 모두 사라지고 내면 가득 거대한 정적이 자리잡는 걸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거대한 정적이 바로 너무 깊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청정해역이다.

이 청정해역은 무엇인가 쓸모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때 찾아온다. 같이 간 이와 함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어떤 유용한 말을 나누거나 기념이 될 만한 사진을 찍으며 수선을 떠는 행위를 내던지고, 그저 하염없이 수평선 너머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마음 안쪽을 쓰다듬는 물결이 밀려오게 된다.

바라만 보아도 ‘멸치떼 같은 아이들이 태어나/ 떼지어 떼지어 몰려다’니는 그 먼 바다가 두고 온 내 사랑이다. ‘아아’ 그 바다 앞에선 하릴없는 감탄사만 터져나온다. 원시음에 가까운 모음. ‘바다’는 자음을 떼어버린 뒤의 나머지 모음과 같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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