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개발로 모습이 바뀌고 있는 인구 3,000만의 도시 중국 충칭(重慶), 1977년 화약폭발사고를 겪고 이름조차 사라져버린 한국의 도시 이리(현 익산). 두 도시에서의 삶을 그린 '중경'(6일 개봉)과 '이리'(13일 개봉)는 재중동포 3세 장률(46) 감독이 처음 한국에서 만든 연작 영화다.
장 감독은 불과 8년 전만 해도 영화감독이 아닌 옌볜대 중문학 교수이자 소설가였다. 영화감독이던 친구에게 술김에 "누구든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가 진짜로 영화감독이 됐다. 제대로 영화공부를 한 적은 없다. 그래서 그의 영화를 낯설어할 관객도 있을 테다.
하지만 그는 "햄버거 많이 찾는다고 곱창집 주인이 햄버거 넣어 팔면 되겠느냐"고 말한다. "관객의 비위를 맞추려면 (대중적인 상업영화의) 물에 젖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러다 보면 진실이 없어질 위험이 있어요."
'중경'과 '이리'는 지금이라도 곧 폭발할 것 같거나, 폭발은 잊혀졌으되 상처는 깊이 남은 그러한 사람들을 역설적이고 충격적으로 그린다.
'중경'에서 중국어강사 쑤이(궈커위)에게 호의를 베푼 경찰 왕위(허궈펑)가 "너는 내 엄마를 닮았어"라고 목소리를 깔면서, 옆자리 깡패들이 한 남자의 팔을 물이 끓는 솥에 집어넣는 것에는 눈 하나 깜짝않는 식이다. 폭발사고로 모자라게 태어난 진서(윤진서)는 친절을 미끼로 다가오는 이들의 성적 노리개일 뿐이다.
장 감독에게 이러한 묘사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일 뿐이다. "중경에 와 보세요. 사람을 총으로 쏘거나 사고를 당해도 눈 하나 깜짝않는 게 일상입니다. 발가벗고 돌아다니는 장면이요? 그런 사람 한번쯤 본 적 없나요? 하도 다반사라 무관심하거나 못 본 척할 뿐이죠."
직설적인 섹스신과 심한 노출수위도 "초라하다는 느낌이 들거나 살아가는 방식을 반성하게끔 하지, 이 장면 때문에 유혹하는 마음(외설적이라는 뜻)이 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냉담하고 처절하게 그리지만 두 영화는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아마도 수십년 만에 옛 연인을 찾아왔을 백발의 노인이 "왜 할아버지 할머니 말소리가 들리지 않아요?"라고 묻는 진서에게 "사랑의 말을 나누는데 왜 남이 듣게 하겠느냐"고 대답하는 대목이 그렇다.
"블록버스터 감독이 큰 슈퍼마켓 주인이면 나는 구멍가게 주인입니다. 여전히 구멍가게 찾는 사람들 있잖아요. 실제로 과거 내 영화를 보고 '내 마음 속의 이야기다' '아무리 어려워도 이런 영화 계속 찍어달라'는 한국 관객이 있었어요. 수천만명의 관객이 웃고 가도 기쁘겠지만 한 사람이라도 같은 생각에 공감한다면 크게 만족스럽습니다. 어떻게 보면 영화도 사랑이에요." 1,000만 명에 속하지 않는, 소수를 위한 영화도 필요하다는 말이다.
"영화는 사랑"이라던 장 감독은 사랑 고백을 해놓고 답변을 기다리는 두근두근한 심정처럼, 기자에게 "관객이 얼마나 올까요?"라고 물었다. 침체된 요즘 한국 영화계 분위기를 설명하자 그의 일관된 어눌한 말투의 대답이 돌아온다. "그래도 구멍가게에는 상관없이 오는 사람들 있잖아요. 주인이랑 서로 얼굴 알아보는 기쁨도 있고요…. 이렇게 자기 위안도 잘 해요."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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