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없는 사랑이 가능할까? 좀 더 구체적으로, (좁은 의미의) 섹스가 배제된 연애가 가능할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서로 어루만질 의사만 있다면. '어루만지다'는 '가볍게 쓰다듬으며 만진다'는 뜻이다.
'철수가 혜린의 뺨을 어루만진다'에서처럼 구상명사를 목적어로 취하기도 하고, '혜린이 철수의 슬픔을 어루만진다'에서처럼 추상명사를 목적어로 취하기도 한다. 추상명사를 목적어로 취할 때, 어루만짐의 도구는 손이 아니라 따뜻한 말이나 유무형의 배려일 테다.
'어루만지다'는 한자어 '애무(愛撫)하다'와 뜻이 많이 겹친다. 그러나 '애무하다'는 추상명사를 목적어로 취하지 않는다. 철수가 혜린의 뺨을 애무할 수는 있지만, 혜린이 철수의 슬픔을 애무할 수는 없다. 모르지, 혹시 혜린이나 철수가 '시적 허용'이라는 특권을 누리는 시인들이라면, 상대방의 슬픔을 애무할 수 있으려나?
"혜린은 철수의 쓰린 가슴을 어루만져주었다" 같은 문장에서 '가슴'이 구상명사인지 아니면 마음의 은유로서 추상명사인지는 확정하기 어렵다. 우리의 언어 직관은 이 경우 '가슴'을 '마음'의 은유로, 곧 추상명사로 판단하는 것 같다.
그러나 '어루만지다'는 목적어를 취하는 데 구상/추상을 가리지 않으므로, 이 문장은 어느 쪽으로 해석해도 상관없다. 반면에 "혜린은 철수의 쓰린 가슴을 애무해 주었다" 같은 문장에선, '가슴'을 '마음'의 은유로 보기 어렵다. 이 경우의 가슴은 구상명사로, 곧 철수 상체의 앞부분으로 해석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어루만지다'와 '애무하다'는 그 어감도 썩 다르다. '어루만짐'은 쓰다듬으며 만지는 행위 일반을 가리키지만, '애무'는 그 행위에 성적 뉘앙스를 포개는 것 같다. '애무'의 본디 뜻이 그렇다기보다, 성애 소설 작가들이 성행위를 묘사하며 이 말을 하도 남용해서 그리 된 듯하다.
"철수가 딸내미의 볼을 조몰락조몰락 애무하고 있네!" 같은 말은 가령 철수가 추위에 언 아이의 볼을 녹여주려고 어루만진다는 뜻으로 읽을 수도 있으련만, 이 말을 듣는 사람은 대뜸 '근친상간' '소아 성애' '성적 아동학대' 같은 상황을 연상하기 십상이다.
'어루만지다'는 이와 다르다. "딸내미의 발바닥을 어루만지는 아빠" 같은 표현에서는 앞의 불쾌한 상황들이 연상되지 않는다. 이 아빠는 오직 딸내미의 발바닥이 너무 귀엽고 정겨워서, 또는 먼 걸음 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쓰다듬어 만져주는 것이다.
그러나 '어루만지다' 역시 섹스의 맥락에서 쓸 수도 있다. 어떤 남자가 어떤 여자의 등줄기(또는 종아리나 발바닥)를 어루만지는 행위가 반드시 마사지를 비롯한 유사 의료행위이리라는 법은 없다. 그것은 전희(前戱)로서 성행위의 일부를 이룰 수도 있고, 그것 자체가 성행위의 전부일 수도 있다.
강제나 거래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면, 어루만지는 행위는 그 대상에게 주체의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다. 때로 그 사랑의 대상은 "청화백자를 어루만지다"나 "소담한 벼 이삭을 어루만지다"에서처럼 사물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때 어루만짐의 대상은 상대의 몸이나 마음일 것이다.
제 연인이 무슨 일로 모욕을 당해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그 상처를 어루만진다. 따스한 언어로. 제 연인이 계단을 급히 내려오다가 발목이 접질렸을 때, 우리는 그 발목을 어루만진다. 따스하고 섬세한 손길로. 그러니까 어루만짐은 일종의 치유이고 보살핌이고 연대다.
스킨십에 유독 인색한 한국인
한국인들은 대체로 사람들 앞에서 제 연인과 스킨십을 나누는 것을 스스러워한다. ('스킨십'이라는 말이 '콩글리시'라며 이를 쓰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 딱하다. '스킨십'은 영어 단어가 아니라 한국어 단어다.
우리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만들어낸 것을 우리가 빌려온 것이다. 일본어에서 '스킨시푸(sukinshippu)'는 주로 젊은 엄마가 아이에게 살갗을 맞댐으로써 모정[母情]을 전하는 일을 뜻한다.
더 넓은 뜻으로는 직장에서의 원활한 인사관리를 위한 간부 사원과 평사원들 사이의 사적 교유를 가리키기도 한다. 신체접촉 일반을 가리키는 한국어 '스킨십'과는 뉘앙스가 꽤 다르다. 요컨대 '스킨십'은 '엉터리 영어'가 아니라 한국어다.)
나이가 들면 연인과 단 둘이 있을 때도 스킨십을 삼간다. 사람들 앞에선 남우세스럽다 여기고, 단 둘이 있을 때도 스스로를 주책없다 여기는 것이 어루만짐에 대한 한국 어르신들의 일반적 태도다.
그러나 어루만짐이라는 형태의 스킨십은 사랑의 처음이자 끝이다. 사람의 살은 다른 사람의 살과 닿을 때 생기를 얻는다. (물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치한들이 시도하는 성추행으로서의 스킨십은 예외다. 그 때의 스킨십은 분노와 불쾌감과 수치심을 낳을 것이다.)
나는 마음의 치유행위이자 사랑행위로서 어루만짐이 되도록 널리 퍼졌으면 좋겠다. 일부 서양문화권에서는 아는 이들끼리(꼭 연인끼리가 아니다) 만났을 때나 헤어질 때 볼에 키스를 하는데(프랑스어로는 '비주'[bisou]라고 한다), 이것 역시 입술로 하는 어루만짐이다.
물론 비주에도 제약이 있다. 여자랑 남자랑, 또는 여자끼리는 비주를 하지만, 남자끼리는 비주를 하지 않는다. 여자끼리의 비주에 견줘 남자끼리의 비주가 동성애를 더 연상시켜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가 남성동성애에 대해 편견을 갖지 않는다면, 남자끼리 하는 비주에도 무심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형태의 스킨십, 여러 형태의 어루만짐이 있다. 비주만이 아니라, 악수도 일종의 어루만짐이고 포옹도 일종의 어루만짐이다. 어루만짐은 특히 섹스가 시들해진 노령 연인들에게 사랑의 묘약이다.
나이든 아내의 손등에, 나이든 남편의 이마에 입을 맞춰보자. 또는 서로 볼을 부벼보자. 그 어루만짐이 아득한 옛날의 연애감정을 다시 솟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대의 정(情)을 새삼 확인하게 할 것이다.
나이 들수록 사람은 외로움을 더 느끼게 되는 법이다. 늙음은 심신의 쇠약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아내나 남편, 정인(情人)이 살아있는 경우에도 그렇다. 그들은 대개 섹스를 포기함과 동시에 어루만짐까지 포기하고 만다.
어루만짐이 외로움을 치료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어루만짐은 더 나아가, 때로는 죽음으로 이르는, 절망이라는 이름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몸이 섹스를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몸이 어떤 접촉도 원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이 탓이든 다른 이유로든 외로움을 타는 사람에게 어루만짐은 최고의 약손이다.
누군가 그녀를 어루만졌더라면…
고인의 유족들에겐 죄송스럽지만, 최진실씨 얘길 잠깐 해야겠다. 문제의 그 날 밤, 친구든 가족이든 직업적 동료든 누구라도 최진실씨의 볼을 어루만졌다면, 그 볼에 제 볼을 부볐다면, 그녀를 힘껏 포옹했다면, 진심에서 우러난 따뜻한 말 몇 마디로 그녀의 상처난 마음을 어루만졌다면, 최진실씨의 선택이 달랐을 수도 있다.
속사정을 전혀 모르는 처지에 이런 말 하는 게 좀 걸리긴 하지만, 최진실씨를 죽음에 이르도록 한 것은 그녀의 외로움, 울화, 절망감이었을 것이다. 외로움, 울화, 절망감은 사람을 죽음으로 이끄는 중병이기도 하지만, 단 한 번의 어루만짐으로 없앨 수 있는 잔병이기도 하다.
단 한 번의 어루만짐이 최진실씨의 그 중병이자 잔병을 완치할 수 없었다 하더라도, 크게 눅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녀를 덜 외롭고 덜 절망스럽게 만들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 거의 모두의 몸뚱어리는 앞으로 백년 안에 먼지가 되거나 썩을 것이다. 우리들의 몸은 우리들 마음이 한시적으로 입고 있는 옷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옷이 다른 사람의 외로움을, 설움을, 상처를 치유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옷깃이 다른 사람의 옷깃과 스치는 것에 인색할 필요는 없겠다. 섹스는 가장 과격한 형태의 어루만짐일 뿐, 모든 사람이 그런 강도의 어루만짐에 목말라 하는 것은 아니다.
주위를 한 번 찬찬히 살펴보자. 가족을 살펴보고 이웃을 살펴보고 친구를 살펴보고 심지어 원수를 살펴보자. 그리고 자신을 살펴보자. 외로운 사람, 절망에 빠진 사람이 수두룩할 것이다.
다시 말해 어루만짐이 필요한 사람이 지천일 것이다. 그들을 몸과 마음으로 어루만짐으로써 그 외로움을 치유해 보자. 자신의 외로움도 치유해 보자. 길어봐야 백 년 안에 썩어문드러질 제 손을, 제 볼과 입술을, 그런 멋진 일에 써보자. 한 시인의 표현을 훔쳐오자면,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객원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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