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사건의 수사(경찰), 기소(검찰), 재판(법원), 형집행(법무부) 등 형사사법 제반 업무를 표준화ㆍ전자화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 중인 '형사사법 통합정보체계 구축사업(형통사업)'이 사업 막바지에 좌초 위기를 맞고 있다. 시스템의 성격과 운영 등을 둘러싸고 법원과 법무부(검찰) 간 이견이 좀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04년부터 전자정부 구축의 일환으로 시작된 형통사업에는 현재까지 783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6일 법원, 법무부,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법원은 형통사업의 법적 근거가 되는 '형사사법절차 전자화 촉진법'의 법무부안을 전면 반대하기로 입장을 정했다. 또 다른 사업 주체인 경찰도 "운영 주체를 분리해야 한다"며 법무부 쪽에 일부 반대 의견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정부 내에서조차 의견통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새가 됐다. 앞서 법무부는 10월 중순 법원, 경찰 등 관계기관에 이 법률안에 대한 의견을 요청했다.
법원과 법무부 양측은 이 사업에 대한 근본 취지부터 달리 해석하고 있어 이견이 좁혀질 가능성은 낮다. 법무부는 형사와 사법정보의 '통합'에 비중을 두고 사업을 추진해 왔으나, 법원은 행정부와 사법부 정보를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연계'라고 소극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또 법무부는 이 시스템이 정보의 '흐름'을 용이하게 해 형사사법 제도 전반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주장하는 반면, 법원은 정보가 '집적'될 때 생기는 부작용을 강조하고 있다.
법원 측은 "법무부안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며 "법안 자체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법원이 문제삼고 있는 것은 시스템의 운영ㆍ관리 문제를 조정하게 될 협의회의 구성 및 역할에 관한 부분이다.
법무부안은 협의회의 구성원을 법원행정처 차장, 법무부 차관, 대검찰청 차장, 경찰청 차장, 그리고 기타 대통령령이 정하는 관계기관 공무원으로 정하고 있다. 법원은 수적 열세 때문에 행정부 입맛에 맞게 협의회가 운영될 것이라는 의심을 품고 있다. 특히 '기타 참석자'에 국정원 관계자가 포함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판결문 작성 시스템을 포함할 것인가도 사법부의 독립 문제와 결부돼 있다. 법무부와 검찰은 "통일성 유지를 위해 판결문 작성도 시스템 표준에 따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법원은 "판결문은 법원 고유 업무인데, 어떻게 행정부가 표준을 정할 수 있냐"며 반발하고 있다.
양측이 이처럼 양보 없는 대립을 하게 된 배경에는 법원과 검찰 사이의 뿌리 깊은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대검 관계자는 "법원이 사법부 독립을 빌미로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대법원 관계자는 "검찰이 시스템 통합이라는 미명으로 법원 내부정보를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이라며 "법무부안 대로라면 형사사법 정보가 모두 검찰에 집중돼 '빅 브라더'가 출현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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