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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신윤복은 남자다

입력
2008.11.04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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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蕙園) 신윤복(申潤福)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SBS TV 사극 '바람의 화원'덕분이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 풍속화가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와 혜원 신윤복을 사제 간으로 설정한 이야기인데, 신윤복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미인도'도 곧 개봉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드라마와 영화가 그리고 있는 것처럼 신윤복은 남장을 하고 남자 행세를 했던 여자가 아니다. 신윤복은 분명히 남자였다. 그 이름이 조선왕조실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오세창의 <槿域書畵徵(근역서화징)> 에는 본관이 고령, 자는 입보(笠父), 호는 혜원, 첨사 신한평의 아들이며 화원으로 첨사 벼슬을 했다고 나온다.

부친 신한평과 증조부 신일홍, 종증조부 신세담은 도화서(圖畵署) 화원이었고, 남동생 여동생도 화원 집안과 혼인했다고 전한다. 여자였다면 자(字)에 지아비 보(父) 자를 썼을 리 없고, 명예직이든 뭐든 첨사 벼슬을 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신윤복을 여자로 둔갑시킨 드라마의 원죄는 원작소설 <바람의 화원> 에서 비롯됐다. 작가 이정명 씨는 신윤복을 여성으로 설정한 데 대해 "섬세한 묘사와 화려한 색감, 여성을 그림의 주된 요소로 삼은 점 등을 근거로 한 상상의 산물일 뿐 역사적 사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작가 자신의 입으로 역사적 사실이 아닌 내용의 역사소설을 썼다고 고백한 것이다.

이씨는 또 "신윤복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거의 없다는 점 역시 상상이 끼어들 수 있는 여지를 제공했다"면서 "독자들이 충분히 허구로 받아들일 것이라는 전제 하에 소설로 쓴 것인데 드라마로 보면서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신윤복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이 된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객관적 역사관을 저버린 무책임한 변명에 불과하다. 관심을 유발하는 계기만 만들 수 있다면 사실을 비틀고 뒤집고, 심지어 남자를 여자로 만들어도 좋다는 말이 아닌가. 신윤복을 여자로 설정한 데 대해 간송미술관의 최완수 연구실장은 "신윤복은 도화서 화원으로 첨사 벼슬까지 지냈는데 조선시대에 여자는 화원이 될 수 없었다"며 "소설가의 상상력은 자유지만 잘못된 정보를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역사소설이나 사극은 실존 인물과 실재했던 사건을 소재로 한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겠다는 욕심으로 작가의 상상력이 무제한 발휘돼서는 곤란하다. 몇 해 전에 방영된 '여인천하'에서는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을 오라비로 둔갑시킨 적이 있었다. 남의 집 족보까지 제멋대로 뜯어 고치고도, 제작 책임자가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당연한 듯 말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황당무계한 역사 왜곡의 예를 들면 많다. 거북선이 진수식 당일 침몰한 것이 그렇고, 연개소문이 김유신의 집 종살이를 했다거나, 대조영이 연개소문의 종 노릇을 했다는 설정도 근거가 없는 허위날조에 불과하다. 재미나 시청률이 중요하다 해도 역사는 작가나 제작자 몇 사람이 마구잡이로 비틀거나 뒤집는 것이 아니다. 또 그렇게 마음대로 해서도 안 된다.

소설가든 대본작가든 제작진이든 역사를 가볍게 여기는 그릇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것은 무책임을 넘어 올바른 역사교육에 역행하는 범죄행위와 다름없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왜곡은 비판하면서 정작 우리 자신이 우리 역사를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다.

황원갑 소설가ㆍ역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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