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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장돌뱅이 김노인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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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장돌뱅이 김노인의 교훈

입력
2008.11.04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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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시골에서는 닷새마다 한 번씩 오일장이 열린다. 나의 텃밭이 있는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도 그런 곳이다. 장이 열리는 날이면 읍내의 도로가 장사치들의 흥겨운 외침으로 가득하고 자동차들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정도로 복잡하지만 모처럼 사람 사는 흥겨움이 넘쳐난다.

그곳 시골장터에서 우연히 만난 김노인. 부엌잡화를 취급하는 그가 잔뜩 쌓아놓은 물건은 저녁때가 되어도 별로 축이 나 있질 않았다. 옆의 젊은 장사꾼은 많이 팔았는데 못 팔아 어쩌냐니까 노인은 대꾸했다. 다른 장사꾼이 많이 판다고 거길 쳐다보면 안 된다는 거다. 자기 복대로 팔아먹고 살기 때문에 내일 또 다른 장터에서 자신의 복을 시험한다며 노인은 작은 트럭에 짐을 싣고 하루를 마감하며 떠났다.

근래 펀드투자의 광풍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휩쓸렸다. 월급을 떼어 던지는 것도 모자라 돈을 꿔서 투자를 하면 손쉽게 50%, 100%, 아니 그 이상의 수익을 냈다고 한다. 원래 주식이건 펀드건 부동산이건 각종 재테크에 돈 벌었다는 사람은 있지만 잃었다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 돈 버는 것 같아 들어가지 않은 사람은 조바심이 나는 게 현실이다. 쉽게 돈벌 수 있는 펀드에 투자하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은 바보취급을 당하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요즘은 어찌 되었는가. 50%만 손해를 보고 환매해도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있으니 이게 정녕 꿈인지 생신지 알 수가 없다.

부동산은 또한 어떠한가. 강남불패, 신도시 필승이니 하며 온 국민은 모두 부동산 투기의 선수들이 되지 않고는 못 배기는 분위기였다. 뭐든 사놓기만 하면 오르고, 뉴타운에 분양만 받으면 돈을 버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뉴타운이 완공되었어도 빈 집이 넘치는 현실은 또 어쩔 것인가. 재건축한 강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 국민이 거품과 신기루에 온몸을 던진 대가를 지불하는 중이다.

그간 우리 삶에는 수없이 많은 거품이 끼어 있었다. 남들이 하니 나도 한다는 부화뇌동의 심사가 거품을 부추겼다. 거품이 꺼지는 대가가 참으로 혹독함을 요즘 새삼 느낀다. 과거 IMF의 쓰라린 경험이 되살아나는 것 같지만 우리들이 당장 실천할 만한 뾰족한 방법도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탓인 것을. 불만 보면 달려드는 부나비처럼 실물이 아닌 허상에 돈을 투자하고 그것을 손쉽게 돈버는 마법이라도 되는 듯 여기지 않았던가.

미국의 골드 러시 당시 모든 사람들이 금을 찾겠다고 몰려갔지만 정작 돈 번 사람은 따로 있었다고 한다. 땅을 파는 괭이나 삽을 빌려준 사람이 그들이다. 그들은 일확천금의 허황한 꿈 대신 실물경제를 이용해 확실한 푼돈을 한 푼 두 푼 모아 부자가 된 것이다.

이제 닥친 경제난은 큰 고통과 아픔을 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고통과 아픔 속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더 큰 고통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나는 이 기회라는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고자 한다. 다시 또 큰돈을 벌고 다시 또 경제가 부흥되어 돈을 축적하는 기회가 아니라, 우리 생활에 나도 모르게 끼어 있는 거품, 나도 모르게 내 의식을 지배했던 허황된 생각, 일확천금을 꿈꾸며 실속없이 허공에 떠서 살아왔던 태도를 걷어낼 수 있는 기회라고 말이다.

나의 분수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을 지키며 올곧게 살아가는 자만이 이러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 남이 돈번다고 그걸 쳐다보면 안 된다는 노인의 삶이 뼈아픈 가르침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고정욱 소설가ㆍ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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