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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하우게 시집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첫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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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하우게 시집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첫 선

입력
2008.11.04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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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보이지 않는 피오르드, 하늘을 찌를듯 솟아있는 전나무들, 뺨을 스쳐 지나가는 투명한 바람. 스칸디나비아 반도 서쪽의 숟가락처럼 생긴 나라, 노르웨이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멀고 생경한 겨울왕국으로 느껴지는 이 나라의 국민시인 울라브 H 하우게(1908~1994ㆍ사진)의 시집이 처음으로 국내에 번역됐다.

<내게 진실의 전부를 주지 마세요> (실천문학 발행)에 수록된 69편의 시는 노르웨이의 풍광을 선연히 떠올리게 한다. 눈 쌓인 피오르드가 보이는 언덕의 농가에서 평생을 보낸 하우게의 시편은 극점에 다다른 절대고독의 경지를 소묘한다. '큰 집은 춥다/ 가을에 그걸 알았다./ 첫 눈송이들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서리 아래 땅이 굳어가는 때./ 그러자 적막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내 외로움이./…/ 나의 숲은 외로움의 숲 속에 있는 숲, 나의 산은/ 외로움의 산 속에 있는 산,/ 그리고 낮은/ 외로움의 밤 속에 있는 한 점 반짝임'('큰 집은 춥다')

농업학교를 졸업한 뒤 정원사로 살았던 시인이 그려내는 목가적 풍경은 때로 미국 시인 프로스트의 그것을 떠올리게도 한다. '길가/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 선 건/ 비 때문만은 아니다,/ 나무의 넓은 왕관 아래에선/ 안심이 된다.'('비 내리는 어느 날 늙은 참나무 아래 멈춰서다'), '밤 사이 풀은 더 푸르러졌다./ 새는 노랫소리를 내어보고/ 안개가 일어나고, 해는 눈 덮인 산마루 위로 오른다'('밤 사이 풀은 푸르러졌다')

고향을 떠나지 않았지만 하우게는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를 독학했고 문학, 철학, 종교, 정신분석학 책을 탐독했던 지적 방랑자이기도 했다. 그리고 '세계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끼는' 지식인의 책무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놀랍게도 그는 한국에 관한 시도 남겼다. '나란히 누워있다. 적이든 아군이든,/ 갈빗대 사이엔 풀이 돋고, 눈구멍으로는/ 빛나는 양귀비, 얼굴 찌푸린 녹슨 무기들,/ 이제 그들은 평화를 얻었다. 어디에 경계선이 그어질지/ 더 이상 줄다리기하지 않는다'. 그의 시 '한국'은 한국전쟁이 끝난 뒤의 폐허와 상실감을 절묘하게 담아내고 있다. 시인이란 아프고 그늘지고 상처받은 이들에 대한 관심을 결코 놓지 않은 존재임을 그는 작품으로 웅변한다.

이 시집에 수록된 '창가의 큰 사과나무를 벴다'는 손택수(38) 시인이 본보에 매주 월~수요일 연재하고 있는 '시로 여는 아침'에 최초로 소개됐었다. 그것이 하우게 시집 번역출간의 계기가 됐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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