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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요란요란 푸른아파트' 불혹의 재건축 아파트, 시끌벅적한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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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요란요란 푸른아파트' 불혹의 재건축 아파트, 시끌벅적한 일상

입력
2008.11.04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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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지음ㆍ신민재 그림/문학과지성사 발행ㆍ176쪽ㆍ8,500원

"애비가 기동이만 할 때 와서, 똑 고만한 손자 데리고 간다. 니도 고생 많었다." 지은 지 40년 돼 재건축이 결정된 아파트를, 이곳에서 30년 세월을 보낸 할머니가 떠나며 쓰다듬는다. 할머니에겐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아파트가 대답한다. "할멈은 착해서 어딜 가든 잘 살 거야. 잘 가…."

뉴타운이니 재개발이니 신산스러운 서울 구석의 짠한 풍경을 <완득이> 의 작가 김려령씨가 동화로 담았다. 작품의 주인공은 곧 헐릴 처지에 놓인 5층짜리 푸른아파트 단지. 그리고 그곳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아가는 열한살 기동이다. 육중한 콘크리트 건물들이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며 황량한 서울에 아직 남아 있는 삶의 온기를 전한다.

김씨는 '작가의 말'에 "다리 부러진 의자를 걱정하고 들에 핀 개망초를 예뻐하던, 그렇게 모든 사물과 이야기를 하시던 할머니를 떠올리며 썼다"고 적었다. 낡은 아파트들은 그런 작가의 상상력에 힘입어 자신들이 품고 사는 사람들을 걱정하고 지켜주는 생명체가 된다. 벼락을 맞아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1동, 기동이네를 품고 사는 2동, 재건축을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덕지덕지 붙은 3동, 다른 동에 가려 음습한 분위기를 풍기는 4동의 엉뚱하고 정다운 대화가 페이지를 채운다.

주민들은 그러나 얼른 재건축 허가가 떨어져 지긋지긋한 푸른아파트를 헐고 새 아파트에서 살 날만 기다린다. 그래도 아파트들은 주민들을 보듬으며 마지막까지 그들의 보금자리가 돼준다. 할머니에게 맡겨진 말썽꾸러기 기동이가 이곳에서 꿈을 키워가는 모습이 아리게 담긴다. 먹고 잠자는 공간의 생명성이 철저히 탈색된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속 깊은 우화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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