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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는 불황을 싣고…

입력
2008.11.04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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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는 최근 아기가 태어났고, 저 집에는 솜씨 좋은 아주머니가 계시지요. 또 이 집 식구들은 옷을 잘 입는 멋쟁이랍니다. 그나 저나 요즘 경기가 정말 안 좋은가 봐요. 부자들까지 알뜰해지기 시작했으니까요."

한진택배에서 11년째 배송 업무를 맡아온 택배기사 J(39)씨의 설명이다. 이제 배송 업무에 어느 정도 이력이 붙은 탓일까. 그는 "10년 넘게 택배 물량을 취급하다 보니 이제 배달 물건에서 세상을 읽어낼 수 있는 눈이 생겼다"며 "어떤 때는 우리가 신문이나 방송보다 세상 흐름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잡아낸다"고 말했다. 여성들의 치마 길이나 버려지는 담배꽁초 길이에서 경기 상황을 읽어내는 것과 비슷한 셈이다.

J씨의 담당 구역은 부촌인 서울 강남의 아파트 밀집 지역. 하지만 그의 말을 빌리면 "요즘 경기는 최악"이다. 으리으리한 고급 주택과 대형 아파트에 평소 보이지 않던 전기장판과 선풍기형 난로가 종종 배달되기 때문이다. J씨는 "작년까지만 해도 유흥업소나 구멍가게에 주로 배달되던 전기장판 등이 요즘엔 부자집에도 많이 들어간다"고 했다.

전기장판의 경우 유가가 많이 오른 탓인지, 전국적으로도 배송 물량이 20%나 늘었다. J씨는 "전기장판 배송이 작년보다 보름 정도 빨리 시작됐고, 물량도 전년 대비 20% 급증한 하루 1만2,000장 수준"이라고 전했다.

전반적으로 배송 물건의 포장이 담백해진 데다, 예전과 달리 종이상자 포장이 줄고 '반짝이'로 불리는 서류봉투형 비닐포장이 늘어난 것도 올해 특징이다. 그만큼 판매업자들도 경영이 어렵다는 방증일 것이다. J씨는 "서류봉투를 이용하면 포장비용을 절반 이하로 줄일 수 있다"며 "덕분에 배송 트럭(1톤)에 150~160개 정도 실리던 물품들이 최근엔 180~200개 가량 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전국의 특산물을 거의 다 외울 정도가 됐다. 3년 전 중국산 기생충 김치 파동 이후 절임배추, 젓갈, 고춧가루, 무, 생강 등의 농산물이 전국에서 올라오기 시작하더니, 최근 멜라민 파동 이후엔 산지 직송 물건이 더욱 늘어나 월 100만건에 달하기 때문이다. J씨는 "먹거리 불안이 지역특산물 판매 촉진에 효자 노릇을 하고 있어 반길 일이긴 하지만, 배송 물건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하는 게 그다지 편안하지는 않다"고 했다.

경기 침체로 어려운 건 고객들만이 아니다. 유가 급등으로 택백기사들의 부담도 크게 늘었다. 월 80만~100만원씩 나가는 기름값을 한푼이라도 줄이려면,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물건을 받은 뒤 작성하는 '배송코스'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배송 주소를 자동 분석해 동선을 잡아주는 시스템이 있긴 하지만, 교통상황 등이 제대로 반영 안 되는 탓에 100% 믿기가 어렵다.

J씨는 "베테랑 기사들이야 하루 200개도 돌리지만, 신입들은 70개 돌리기도 쉽지 않다"며 "후배들 배송코스까지 잡는 게 일이 됐다"고 말했다. 국내 택배 물량은 매년 20%씩 늘고 있지만, 화물연대 파업 이후 배송차량(화물차) 증차가 안 되는 것도 J씨 어깨를 무겁게 하는 이유다.

정민승 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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