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북미와 유럽에 모터사이클 경기복을 수출하는 H사의 박모 회장은 요즘 밤잠을 설치는 날이 많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수출 물량이 하루가 다르게 줄어들고 있는 데다, 환율 널뛰기로 원자재 수입과 제품 판매 시기 결정에 골머리를 앓고 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은 "해외 거래처에서 주문량을 줄이거나 단가를 깎아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2. 아파트에 주로 쓰이는 창호 전문 제조업체인 D사의 박모 사장은 요즘 회사를 매각할 결심을 굳히고, 조용히 매수자를 물색 중이다. 그간 20년 넘게 피땀 흘려 일궈온 회사지만, '감(感)'으로 느끼는 요즘 상황을 고려할 때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도달한 탓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실물경기 침체가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수요 부진이야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문제는 그 속도가 너무나 가파르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예전에 경기가 고꾸라질 때는 좀 준비할 만한 할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게 급변하니까 사업 계획에 손 대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영 여건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고 있어 현기증이 날 정도"라고 했다.
과거엔 환율이 급등하면 환차익이라도 노려볼 만했지만, 지금은 턱도 없는 소리다. 생산량의 절반 가량을 해외에 수출하는 홈네트워크 전문업체 K사는 지금 상황을 '끝을 알 수 없는 터널의 입구'에 비유했다. 해외 건설경기가 동반 침체된 탓에 환차익보다는 수출물량 감소 충격이 더 크다는 것이다.
오히려 원ㆍ달러 환율 상승으로 2020년 만기가 돌아오는 통화옵션파생상품 '키코' 손실만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변모 부사장은 "환율 급등에 따른 키코 손실에다 홈네트워크에 들어가는 중국산 반도체와 LCD 등 원재료값 급등까지 겹쳐 어느 것 하나 기댈 곳이 없다"며 울상을 지었다.
중소 석유화학 업체들은 사실상 고사 상태다. 폴르프로필렌(PP) 제조업체 P사는 이달 중순부터 연산 17만톤 규모의 4개 생산라인 중 3개 라인의 가동을 중단했다. 최근 국제유가가 떨어졌지만, 환율 급등으로 원료비용이 줄지 않는 데다 수요도 급감하면서 재고가 크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고철값 폭락과 수주 감소로 고통 받는 철강업계와 조선업계는 물론, 전자 유통 등 산업계 전체가 외환위기 당시에 못지않은 위기의식을 느끼는 분위기다. "이러다 정말 망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직원이 한둘이 아닌데…."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김모 대표는 "밤에 어디로 멀리 도망가고 싶은 심정"이라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산업팀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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