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 등에 음악을 입혀온 영화음악감독 조성우의 데뷔작은 1993년 '고철을 위하여'라는 작품이었다. 허진호 감독이 연출하고 중견배우 안석환이 주연했음에도 대중들에게 이 영화가 낯선 이유는 단지 20분짜리 단편이라는 존재형식 때문이다.
영화사 청어람의 최용배 대표는 1990년대 후반 어느날 '백색인'이라는 단편영화에 마음을 사로잡혔고, "이 영화의 감독과는 꼭 한 번 일을 같이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최 대표의 다짐은 2006년 국내 역대 최고 흥행작인 '괴물'(감독 봉준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18분 분량의 단편영화 한 편이 1,300만 관객을 모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제작에 견인차 역할을 한 셈이다.
단편영화 하면 흔히들 저예산에 조잡하고 실험적인 내용으로 대중들과 벽을 쌓으려 하는 영화라는 편견이 만연해 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정답도 결코 아니다. 단편영화도 촌철살인의 재기로 관객의 허를 찌르며 영화적 재미를 구축한다.
단편영화 연출을 장편 감독 데뷔를 위한 이력 쌓기 정도로 치부해도 오산이다. 적지 않은 유명 감독들이 단편 작업을 통해 자신의 영화관을 가다듬고,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달은… 해가 꾸는 꿈'과 '3인조'의 잇따른 흥행 실패로 실의에 빠졌던 박찬욱 감독이 대표적이다. 박 감독은 "1999년 단편영화 '심판'을 연출하면서 영화를 새롭게 바라보게 됐고 내가 나를 넘어서게 되는 계기를 맞았다"고 회고한다.
11월 5~10일 제6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가 서울 종로구 신문로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열린다. 한국을 포함, 30개국 70편의 단편영화가 스크린을 비춘다.
'에이리언'과 '글래디에이터' 등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첫 단편영화 '소년과 자전거'(1965),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최신작 '태양은 하나다'(2007), 러시아의 영상시인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킬러들'(1965) 등이 목록에 올라있다. 올해 유난히 이 행사가 눈길을 잡는 이유다.
프랑스가 낳은 세계적인 영화평론가 앙드레 바쟁은 "단편영화는 미래영화"라고 단정했다. "자유로운 상상력과 분방한 정신이 만들어낸 연금술의 신비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거장들의 과거와 미래의 거장들의 현재를 볼 수 있는 단편영화제, 영화광을 자처한다면 한번쯤 둘러봐야 할 행사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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