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6월 구로동맹파업이 일어났을 때, 나는 3년차 직장인 겸 석사과정 3학기 대학원생이었다. 파업을 지지하며 연대를 건네는 대자보들이 교정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다니던 직장도, 정보를 캐내 파는 회사였으므로, 동맹파업 얘기로 시끌시끌했다.
그 때 나는 심상정이라는 이름을 몰랐다. 그러나 그 잔혹했던 군부파쇼 시절, 동맹파업을 조직한 이들에게 동시대인으로서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부끄러움은 부러움이기도 했다. 나는 교정의 대자보들에서 지천으로 발견되는 세 겹 느낌표(!!!)를 핑계삼아, 그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억지로 눅였다. 젊어서부터 나는 세 겹 느낌표를 경멸했다. 그것이 독선과 반(反)지성의 기호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85년 구로 동맹파업과 서노련
파업이 가혹하게 진압된 직후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이라는 '대중정치조직'이 만들어졌을 때도, 나는 심상정이라는 이름을 몰랐다. 다만 그 조직을 이끄는 이의 실명이 김문수라는 것을 직장 동료에게서 얻어들었다. 동료의 (어쩌면 편견에 찬) 논평에 따르면, 김문수는 '골수 빨갱이'라는 것이었다. 그 말이 옳았든 글렀든, 김문수는 지금 '하얗디하얀' 경기도지사가 돼 있다. '전향' 자체는 선(善)도 악(惡)도 아니다. 사람과 상황은 변하게 마련이니까.
그러나 그것도 정도 문제다. 노동운동가 시절의 극좌 인사가 극보수 정당의 중진 정치인이 돼 있는 것을 보면, '인간은 모두 존엄하다'는 말이 허언(虛言) 같다.
내가 심상정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새 천년이 돼서였다. 그는 당시 금속노조 사무처장이었다. 그즈음에야, 나는 구로동맹파업과 서노련의 중심에 심상정이라는 여자가 있었음을 알게 됐다. 그리고 '금속노조'라는 '무시무시한' 산별노조를 이끄는 헌신적 노동운동가가 여자라는 데 '조금' 놀랐다. '붉은 로자'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로자 룩셈부르크를 떠올리며, 나는 더러 '붉은 상정'이라는 말을 되뇌어보곤 했다.
그러나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소속 국회의원으로 뽑혔을 때, 심상정은 한 세기 전의 로자만큼 붉어 보이진 않았다. 말하자면 그도 전향을 한 셈이다. 그 전향은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 를 통째로 암송하던 20대의 급진 사회주의자에서, 의회 활동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40대 사회민주주의자로의 전향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당당하고 아름다운 전향이었다. 역사에서 확실히 패배한 체제에 이끌려 현실과 유리된 언어를 계속 농하는 것은 부정직하고 무책임한 짓이므로. 무엇을>
17대 국회 재경위에 소속돼 심상정이 펼친 '잔다르크적'활동을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겠다. 전문성이 가장 요구되는 위원회에서 그는 부지런히 공부하며 경제관료들에게 뒤지지 않는 식견을 결기 있게 펼쳤고, 이내 진보정치의 한 상징이 되었다. 지나간 역사를 가정하는 것만큼 허망한 짓도 없지만, 만일 17대 대선에서 '반(反)신자유주의 연합전선'의 단일후보 심상정이 이명박과 맞붙었다면, 승자와 패자의 득표 차이는 크지 않았을 것이다.
18대 총선에서 진보신당 후보로 고양 덕양에 출마했다가 석패한 심상정은 이제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대선에서 이명박에게 압승을 안기고 총선에서 심상정을 떨어뜨린 '그' 유권자들과 더불어 진보정치의 희망을 조직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당당한 아름다움이 이어지길
심상정은 최근 <당당한 아름다움> 이라는 책을 냈다. 편집이 세련되긴 했으나, 정치인들이 흔히 내는 그만그만한 책이다. '봉하마을 어른' 덕분에 지난 다섯 해 동안 내 염세주의는 한층 악화했다. 그래서 심상정에게서도 경계의 눈초리를 말끔히 거두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책 표제 '당당한 아름다움'은 과장돼 보이지 않는다. 쉰 살 심상정은,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당당하고 아름답다. 앞으로도 이 책의 표제가 심상정의 삶에서 빛 바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당한>
고종석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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