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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다문화가정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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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다문화가정을 위하여

입력
2008.10.31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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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전에 들른 시골 친척집에는 베트남 신부가 3년 전에 시집와 살고 있었다. 벌써 두 살 된 딸이 있고 석 달 뒤면 또 아기를 낳는다. 마흔이 넘은 남편은 신장이식을 했지만, 아내는 그 사실을 모른다. 귀까지 어두워진 남편은 농사일은커녕 하루 종일 멍하니 앉아 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대학까지 나왔다고 귀띔하면서, 처음엔 양순하더니 이제는 소리를 지르며 대든다고 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까. 속았다는 생각도 할 테고. "남편이 원래 환자라는 걸 알면 도망갈지도 모른다"며 시어머니는 걱정하고 있었다.

사기ㆍ부작용 많은 국제결혼

가까이서 본 사례여서 소개한 것 뿐이지만, 각 지방의 국제결혼 가정에는 저마다 심각한 문제와 사연이 있다. 40대 남성에게 시집온 19세의 베트남 여인이 한 달 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려다 술 취한 남편에게 맞아 숨진, 올해 8월의 사건은 수치스럽고 가슴 아프다. 인연과 사랑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어린 신부의 편지는 결국 유서가 되고 말았고, 한국인들에게는 반성의 계기가 됐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국제결혼은 3만8,491건으로, 전체 결혼(34만 5,592건)의 약 11.1%에 이르고 있다. 국내 거주 결혼이민자는 2004년 이래 매년 11% 이상 늘어 올해 7월까지 총 14만4,385명으로 집계됐다. 다문화사회라는 말과 달리 다문화가정이라는 말은 좀 우습지만, 다문화가정은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이고 피할 수 없는 추세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지자체와 각 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지원 활동은 아직도 많이 미흡하다. 특히 1회적 이벤트에 그치는 행사일수록 시혜적이고 일방적인 성격이 강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한다. 결혼이민자와 그 가족 구성원의 사회 적응을 위해 제정된 다문화가족 지원법이 9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다. 특히 대부분의 지자체에 전담 조직이 없다

. 이 법의 모법이라 할 수 있는 건강가정기본법 제34조에는 '보건복지가족부, 시ㆍ도 및 시ㆍ군ㆍ구는 건강가정사업에 관한 업무를 전담하여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여건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러나 이런 것은 모두 가정이 형성된 이후의 일에 관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후의 관리나 지원이 아니라 가정 형성 이전의 사전 조치와 서비스다. 내국인들끼리의 결혼은 국가를 비롯한 공적 기관이 개입할 여지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되지만 국제결혼을 통해 새로운 국민을 받아들이는 과정에는 공적 간여와 개입이 필요하며, 마땅히 지금보다 더 강화해야 한다.

말썽 많은 국제결혼중개업의 경우 결혼중개업법이 6월부터 시행되고 있으나 제공해야 할 신랑신부의 신상정보에 관한 내용이나 정보 제공의 시기 절차 방법 등 핵심사항이 빠져 있다. 이런 정보를 제공해야만 속아서 결혼하는 사례를 예방하고 벼락치기 결혼의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한 보도에 따르면 베트남신부를 얻는 한국 신랑이 1,200만원을 낼 경우 다단계 중개구조로 인해 신부 집에 돌아가는 것은 겨우 30만원이라고 한다. 국가의 공적 개입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아무리 농촌총각 장가 들기가 어렵고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외국여성들이 많다지만, 되도록이면 더 나은 사람을 정당하고 합리적이며 인간적인 절차와 방법으로 맞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정형성기부터 공적 도움을

보건복지가족부가 30일 발표한 '다문화가족 생애주기별 맞춤형 지원 강화대책'에는 내년에 중개업자의 신상정보 사전제공 의무규정 등을 신설하도록 법령을 개정하고, 중개업체와 이용자 간 공정 거래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표준약관을 제정하는 방안이 들어 있다.

차질없이 정밀하게 추진해야 하겠지만, 가정 형성기의 일에 관한 것은 복지부 차원의 일이 아니므로 지자체의 전담조직처럼 범정부 차원의 전담 기구와 조직을 운영할 필요가 있다. 가정이 국가의 기초이듯이 다문화가정은 다문화사회의 기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지표 중 하나인 '성숙한 세계국가'에 맞게 일을 해야 한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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