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이가 한국 사람인데 잘 못해서 속이 힘들어요(민정이가 한국 사람인데도 한국말을 잘 못 해서 속상해요). 이제 도서관에 오면서 내 마음도 좋아요(도서관에 다니면서 한국말이 좋아져서 이제 마음이 놓여요)."
2004년 베트남 신부로 한국에 첫 발을 디딘 스울탄람(32ㆍ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씨. 그는 첫 딸 민정(4ㆍ가명)을 낳은 후 마음 편할 날이 하루도 없었다. 민정이가 커가면서 우리 말을 제대로 배우지 못해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엄마인 자신도 간신히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하는 신세라 민정이에게 한글을 가르칠 수 없었고, 아빠는 종일 밖에서 일을 하고 밤 늦게 돌아오는 탓에 민정이와 함께 할 시간이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종일 텔레비전을 켜놓고 민정이가 한국말을 스스로 배우기를 바랐지만, 아이의 입은 좀체 열리지 않았다.
민정이 걱정에 밤잠을 제대로 못 이루던 그에게 지난달 말 한줄기 희망의 빛이 찾아왔다. STX그룹이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민정이와 같은 다문화 가정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을 개관한 것이다.
우리 말이 서툴러 평소 바깥 나들이를 꺼렸던 그는 민정이를 위해 도서관을 찾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3주 후, 민정이는 한국인 자원봉사자 교사들의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하루가 다르게 우리말 실력이 늘어가고 있다.
'STX와 함께하는 다문화어린이도서관-모두'는 STX그룹이 푸른시민연대와 힘을 합쳐 만든 국내 최초의 다문화어린이 도서관으로, 지난달 29일 문을 열었다. 민정이와 같은 다문화가정 어린이들은 이곳에서 일주일에 두 번(화ㆍ목요일) 한국어 교육을 받는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문종석 푸른시민연대 대표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언어 부적응"이라며 "외국인 엄마 밑에서 언어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해 일상생활에서조차 따돌림을 받고 있는 아이들을 보살피기 위해 도서관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실제 민정이는 이 땅에서 태어난 한국인이지만, 정작 한국 아이들과 같은 보살핌과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자라왔다.
외국인 엄마들은 병원이나 유치원 등에서 엄마끼리 '구전'으로 이어지는 한국식 보육에 소외될 수 밖에 없고, 아이들도 엄마의 전철을 밟기 마련이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겉 모습만 한국 사람일 뿐, 이방인으로 대접 받는 이유다.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은 일반인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험난한 성장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문 대표의 얘기를 들어보자.
"몇 년 전 필리핀 출신의 젊은 엄마가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는데, 몇 달 후 그 아이를 봤더니 성장이 거의 안됐더군요. 알고 보니 육아 경험이 전혀 없는 필리핀 엄마가 퇴원 당시 간호사가 젖병에 표시해둔 분유량을 몇 달 동안 그대로 먹였던 거에요."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면서도 커뮤니케이션(소통)에는 소외돼 있는 다문화 가정 아이들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때문에 이 도서관은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 뿐 아니라 다문화 가정 엄마와 한국인 엄마들이 만나 소통하고 문화를 나누는 공간이기도 하다. "다문화 가정 엄마와 아이들이 또래 엄마나 아이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한국인으로 성장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문 대표의 생각이다. 그래서 일반인도 도서관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개방해 놓았다.
도서관이 역점을 두는 또 하나의 역할은 엄마나라 이해하기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성장하면서 한국말을 자기보다 못한다는 이유로 엄마를 무시하거나 외모가 남들과 달라 남다른 시선을 받는 것이 엄마 때문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엄마의 나라를 제대로 이해하기 못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다문화어린이도서관-모두'는 12개국 1만여권의 책을 비치, 엄마가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모국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엄마들은 어릴 적 자신이 읽었던 베트남과 몽골, 중국 등의 동화책을 읽어주며 아이와의 거리감을 좁힐 수도 있다.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우리 사회의 건강한 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이런 도서관이 전국적으로 많이 생겼으면 하는 게 스울탄람씨의 소박한 바람이다.
■ STX 장학·복지재단
"글로벌 기업의 위상에 걸맞게 사회적ㆍ윤리적 책임을 위해 더욱 힘을 쏟자."
올해 초 강덕수 STX회장의 신년사 화두이다. 그는 예전과 달리 성장보다는 사회적 책임에 무게를 뒀다. 그만큼 성장 측면에선 어느 정도 괘도에 올랐다는 자신감의 표현일 것이다.
STX그룹의 올해 매출액은 조선 경기와 해운사업 호황으로 惻??24조원)보다 크게 늘어난 37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 회장의 신년사는 이런 외형 성장을 바탕으로 앞으로는 성장의 그늘에 가린 이웃을 돌아보는 따뜻한 기업이 되자는 당부인 셈이다.
강 회장은 평소에도 "경북 선산 출신의 촌놈이 상경해 맨손 하나로 글로벌 기업을 이루기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았다. 이렇게 번 돈을 자식보다는 소외된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말해왔다.
STX그룹은 강 회장의 이런 나눔 철학에 기초해 2006년 자본금 130억원의 장학재단을 설립, 본격적인 사회공헌활동에 나섰다. 연간 학부생 1,200만원, 대학원생 1,600만원, 해외 유학생 5만달러를 지급한다.
지금까지 총 64명의 국내 장학생과 18명의 해외유학 장학생을 배출했다. 우수 인재 양성을 위한 대학발전기금 지원사업도 펼치고 있다. 올해에만 서울대, 육군ㆍ해군사관학교, KAIST, 연세대, 고려대, 서울대병원, 창원대 등 8곳에 총 40억원 규모의 발전기금을 전달했다.
장학재단과 함께 그룹의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또 하나의 축은 STX복지재단이다. ▲소외계층에게 무상으로 주택을 제공하는 '나눔의 집' 사업 ▲다문화 가정의 고향 방문 지원과 공부방 아동 학습 기자재 지원 ▲저소득층에 대한 생활비 지원 등을 펼치고 있다.
조선소가 위치한 경남 지역에선 저소득층 청소년들에게 조선 관련 직업 훈련을 시켜 채용까지 하는 새로운 사회공헌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STX 관계자는 "직업훈련과 채용을 통해 소외계층에 대한 단순 지원을 넘어 자활까지 책임지는 통합 지원 프로그램으로 활성화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또 프로축구 경남 FC에 대한 지원과 함께 조손(祖孫ㆍ할아버지와 손자) 가정, 소년소녀 가장 등의 꿈을 키워주기 위해 축구 꿈나무 지원사업도 벌이고 있다.
서충일 STX그룹 대외협력부문장은 "올해 말까지 그룹 내에 산재한 사회공헌활동 기관을 통합ㆍ관리해 글로벌 기업에 걸맞은 다채로운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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