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쯤 전 여름, 미국 어느 국립공원과 골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두 시간 뒤 남서쪽 바위 주위에 소나기가 예상됩니다." "5, 6, 14번 홀 근처에 번개가 우려되므로 그곳 골퍼들은 1시간 정도 이동을 멈추되 높은 나무 아래를 피하기 바랍니다." 기상위성이 보내주는 구름사진을 보면서 실시간으로, 지형에 따라 안내방송이 나왔다. 맞춤형 일기예보다.
연방기상청이 일괄적으로 발표하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유료로 정부 기상위성의 자료를 받아 자체 해석하여 알려준다. 비슷한 서비스를 우리도 접하게 됐다. 어제부터 시행된 기상청의 '동네예보'다.
■기상청의 애로는 '예보를 제대로 했는데 틀렸다고 욕을 먹는다'는 것이다. 어느 휴일 서울 도봉산 입구 우이동에 아침 6~7시쯤 비가 내렸다고 하자. 우이동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비가 온다더니 오는구나' 정도로 생각한다. 다른 시민들, 특히 강남이나 용산ㆍ중구에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서울시민 대다수가 '비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신문이나 TV는 그 날 '서울 오전에 가끔 비'라는 일기예보를 전달했다. 기상청은 틀리지 않게 예보했는데, 시민들 대다수는 '가끔 비'라는 예보를 비난한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매일 3시간마다, 읍ㆍ면ㆍ동 동네별로 일기예보를 구체화ㆍ세분화하면 기상청의 이러한 '억울함'도 해소되겠지만, 국민들 입장에선 여간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경기지역 한 때 소나기'의 상황이지만, 오후 용인시 어느 곳에선 레미콘 공사를 연기할 이유가 없다.
'경남지역 가끔 비'라고 하지만, 지리산을 오르는 시간과 등반로를 조정하면 비옷을 두고 가도 좋다. 신문이나 TV에서 원하는 시간, 필요한 지역의 날씨를 다 알려줄 수야 없지만, 인터넷 www.digital.go.kr이나 기상청 홈페이지에서 강수량은 물론 풍속과 습도까지 간단히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가로세로 30㎞ 기준 측정치로 추론한 자료를 산과 계곡과 평지가 불과 수백m 사이로 뒤섞인 우리 지형에 제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평야면 평야, 산이면 산이 수천㎢씩 모여 있는 미국도 5㎞간격으로 기준치를 구하고, 2004년에야 동네예보를 시작했다. 10년 이상 국립공원이나 골프장처럼 정보가 필요한 곳이 위성자료를 받아 자체 해석하는 과도기를 거쳤다. 동네예보가 유익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갑자기 '좋은 일'이 닥치니 걱정이 앞선다. 혹 기상오보 비난을 줄여보기 위한 의도가 크다면 좀 천천히 해도 될 텐데.
정병진 논설위원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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