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채시장마저 얼어붙었어요. 이젠 더 이상 돈을 꿔 달라고 얘기할 만한 곳도 없습니다."
A사의 자금 담당인 P(42)부장은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전반적인 신용 경색으로 업계에 자금이 돌지 않으면서 A사의 자금 사정도 급속도로 악화,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은행은 물론 제2금융권과 사채시장까지 이곳 저곳 돈을 구하러 뛰어다녀 보지만, 어디서도 쉽게 자금을 구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자금 사정이 이렇게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3개월 전, 거래 은행에서 기존 대출금 50억원에 대한 만기 연장이 어렵다는 통보를 해 오면서부터. P부장은 "대출 이자를 밀린 적도 없는데, 대출금을 모두 갚으라는 것은 심하다"며 항변했다. 그러나 은행에선 "해외 자산 가치 등이 떨어져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맞추려면 어쩔 수 없다"며 대출금 상환을 요구했다. A사의 최근 실적이 악화해 총부채가 영업이익에 비해 너무 커졌다는 것도 상환을 독촉한 이유였다.
P부장은 협력사에 지급해야 할 대금과 회사 유보자금으로 일부 대출금을 상환한 뒤 아예 은행으로 출ㆍ퇴근 하며 매일 통사정을 하고 있다. 협력사엔 1개월짜리 어음을 2개월짜리로, 2개월짜리는 3개월짜리로 돌리며 급한 불을 끈 상태다. 임원들 임금도 체불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달 들어 이마저도 한계에 달하고 있다. 협력사들이 "더 이상 어음을 결제해주지 않으면 우리가 부도가 나게 생겼다"며 대금 지불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P부장은 대주주들에게 증자의 필요성을 역설했지만, 이들조차 다른 곳에 돈이 묶여 더 내놓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사정이라는 설명만 들어야 했다.
P부장은 며칠 전 거래 은행 지점에서 "5,000만원짜리 어음을 막지 못하면 부도가 날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뒤 급하게 사채시장으로 뛰어갔다가 실망한 하고 돌아왔다. A사라는 말을 듣고는 돈을 빌려주길 거부한 것이다. 결국 P부장은 이번 달 직원들 월급을 위해 남겨뒀던 마지막 자금을 쓸 수밖에 없었다.
P부장은 "최고 신용도의 트리플A 기업들조차 회사채 발행이 쉽지 않은 상황인데, 중소기업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며 "매일 현금이 들어오는 사업부를 가진 일부 기업을 제외하면 대다수 기업들이 제2의 C&그룹이 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제까지 이런 어려움이 계속되고 과연 회사가 이를 버틸 수 있을 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아무리 지원책을 쏟아내도 기업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연말이 오기 전에 흑자 부도 기업들이 속출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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