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만
시골 온돌방 아랫목이 구들화기에 거머번지르하게 눌어붙은
장판을 보면 생각난다
내 나이 겨우 네댓 살
어머니는 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꼬들꼬들하게 식힌 고두밥을
얼금얼금 대충 빻은 누룩에 골고루 썩어 술옹차리에 담고
시원한 우물물을 자분자분하게 부울 때 참께 한줌 뿌려
그 위에 솔잎을 솔솔이 덮으면 고만 약술이 되었다
어느 날 어머니는
밀주단속 나온 주재소원들을 내보내느라
아랫목에 떡 버티고 있는 그놈의 술옹차릴, 순간
당신 치마 속으로 덥석 숨겼지 뭐야
어머니는 일부러 이마에 손을 얹어 끙끙 앓는 소릴 내며
-아 우리 집은 그런 것 없소 마
-아이고 머리야
어머니 치마 속에는
뽀글뽀글 술 익는 소리며, 술 냄새가 진동하는데 말이여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총칼을 든 군인들에 ?기던 한 사내가 들판 한가운데 노출되었다. 은신할 만한 나무 한 그루 없는 들판에서 꼼짝없이 목숨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서 눈 앞에 홀로 밭을 매는 여인이 클로즈업된다.
사내는 여인의 풍성한 치마 속으로 숨어 들어가고, 여인은 사내를 치마 속에 품은 채 군인들을 따돌린다. 그리고 그 둘 사이에 아기가 태어난다. 제목도 떠오르지 않는 그 영화 속의 치마는 총칼을 물리치고 생명을 낳는 대지의 다른 이름이다.
영화 속 여인처럼 시인의 어머니 역시 밀주단속을 나온 주재소원들을 꾀병을 부려 물리친다. 술 익는 소리와 냄새가 진동하는 어머니의 치마 속 항아리 생각만으로도 얼큰해오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감시와 처벌을 따돌리며 술을 익히는 어머니들의 밀주가 그립다. 사카린을 탄 술지게미를 먹고 어칠비칠 게걸음을 치던 유년이 내게도 있었던 것 같다.
손택수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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