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7% 성장을 위해 대대적인 감세 정책을 쏟아내더니, 이제는 위기의 해법 역시 감세에서 찾는다. 기업들의 투자를 늘리는 데도, 국민들의 소비를 진작하는 데도, 침체된 주택 거래를 활성화하는 데도, 심지어 증시를 부양하는 데도 어김없이 '감세 카드'가 등장한다.
마치 이 정부에게 감세는 우리 경제가 앓고 있는 모든 병을 치유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 같다. 이대로 감세 처방이 지속된다면, 엄청난 뒷감당은 고스란히 차기 정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속도 내는 추가 감세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정부의 목표는 "감세의 차질 없는 추진"이었다. 하지만 최근 1주일 새 기류가 확 바뀌었다. 기존 감세 정책만으로는 지금의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에 턱 없이 부족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이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들면서 이제 추가 감세는 기정사실이 됐다. 이르면 주중 발표될 '경기활성화 종합대책'에도 감세는 재정 지출 확대와 함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전망이다.
가장 유력한 것은 소득세와 법인세의 조기 인하다. 단계적 인하가 예정돼 있는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 시기를 일괄적으로 내년으로 앞당기겠다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해서는 기업들의 투자 확대와 소비 진작이 필요하다"며 "소득세와 법인세 인하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1가구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소득세 중과를 폐지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이다. 강 장관은 지난 22일 국정감사에서 "어느 나라도 세금을 50%, 60%씩 부과하는 나라는 없다"며 양도세 중과 폐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와 관련, 국회 예결특위 김광림 한나라당 의원은 "1세대 2주택까지는 양도세 부담이 확 떨어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며 "대신 1세대 3주택 이상은 세금을 많이 물리는 쪽으로 야당과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증시 부양책의 일환으로 현재 0.3%인 증권거래세를 대폭 인하하는 방안도 시기를 저울질하는 중이다.
되돌릴 수 없는 악수(惡手)
내리기는 쉬워도 올리기는 어려운 게 세금이다. 세금을 깎아준다고 반대할 사람은 없어도, 당장 세금이 단 돈 몇 만원만 늘어나도 엄청난 조세저항에 부딪힌다. 더구나 지금은 가뜩이나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지출을 대폭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나중에는 적자 국채를 계속 찍어내는 것 외에 마땅히 손 쓸 도리가 없는 지경이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감세가 내수 부양에 대단한 효과가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정부는 감세가 투자를 활성화해 세수를 늘린다는 이른바 '래퍼 효과(Laffer effect)'를 맹신한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조차 반론이 많다. 정부 한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법인세를 낮춰준다고 기업들이 투자에 나설 것 같으냐"며 "아무리 세금이 높아도 수익이 보장되면 투자를 늘릴 것이고, 세금이 낮아도 수익성이 없으면 투자를 하지 않기 마련"이라고 했다.
한국조세연구원이 최근 작성한 정부 용역 보고서의 결과도 마찬가지다. 법인세율 감소분의 절반이 훨씬 넘는 59.5%는 사내에 고스란히 유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도세를 줄여준다고 당장 주택 거래가 활성화되는 것도, 증권거래세를 낮춰준다고 주가가 뛰는 것도 아니긴 마찬가지다. 오히려 향후 경기가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시점이 되면, 투기 조장 등 부작용만 속출할 수 있다. 윤종훈 시민경제사회연구소 기획위원(회계사)은 "감세를 하는 경우 세출을 줄여서 균형 재정을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감세는 일시적 재정 적자가 아니라 적자 재정 구조를 고착화하겠다는 것이어서 다음 정부로 넘어가면 재정적자, 국가부채 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문향란 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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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姜장관 '감세 집착증'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은 자타가 공인하는 세제 전문가다. 공직 입문 이래 옛 재정경제원 세제실장 자리에 오르기까지 공무원 경력 절반 이상을 세제 관련 업무에 몸 담았다.
굵직한 업적도 남겼다. 국내에 부가가치세를 첫 도입할 당시 실무 담당자로 주도했던 역할은 강 장관이 지금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세제실장 시절엔 부동산실명제도 도입했다.
당연히 강 장관의 세제 정책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현 정부 감세정책의 대부분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이후 강 장관의 머리 속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감세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정부의 감세 만능주의도 결국 이 같은 강 장관의 생각이나 다름없다.
그의 감세에 대한 소신은 확고하다. '강부자 감세' 지적에 대해선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세수 감소 우려에 대해선 "투자 활성화 등으로 경기가 부양돼 중장기적으로 세수가 더 늘어나게 된다"고 맞선다. 때론 학창시절에 읽었던 경제학 교과서를, 때론 국제통화기금(IMF) 등 해외 기관들의 권고 사항을 들이대며 감세 정책의 필요성을 설파한다.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감세의 부작용을 따져 묻는 의원들을 상대로 연일 추가 감세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는 지난 7일 국감에서 "오히려 감세 시기를 당기고 폭도 넓혀야 한다"며 "모든 감세는 투자에 긍정적"이라고 추가 감세에 불을 당겼다. 이어 22일 국감에서 강 장관은 "1세대1주택자 양도세 감면도 합의만 된다면 확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국회에서 조세 원리에 따라 심도 있게 수정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같은 날 1세대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와 관련해서도 "세금을 50%, 60%씩 부과하는 나라가 없다. 세법 심의 과정에서 심도 있게 생각해 같이 얘기하겠다"고 밝혔다.
강 장관의 이런 감세 집착증에 대해 우려도 상당하다. 조세는 변화 못지않게 안정성도 중요한데, 강 장관은 평생 머릿 속에 그리고 있던 조세의 틀을 한꺼번에 다 바꾸려 하고 있다. A연구소 관계자는 "부가가치세 도입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듯 장관 재임 중에 본인이 원하는 정책을 모두 다 펴보고 싶은 것 아니겠느냐"며 "한번 내린 세금은 다시 올리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의 감세정책은 후임 장관들에게는 큰 대못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영태 기자 ytlee@hk.co.kr
■ 감세 효과 "불황 탈출" "쌍둥이 적자 뿌리"
경기 부양을 목표로 '감세'정책을 내놓는 건 우리뿐만은 아니다. 경제 침체의 위기에서 정부가 꺼내들 수 있는 단골 정책이 감세이기는 하지만, 역대 사례를 보면 나라 살림에 주름을 지우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세계 각국에서 시도한 감세정책 중 대표 사례는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 집권기(1981~1989년)의 감세정책이다. 레이거노믹스는 MB정부 감세정책의 모델이기도 하다.
레이건 행정부(1981~1989년)는 가장 화끈한 감세정책을 펼쳤다. 세금을 줄여 민간의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 1,2차 오일쇼크 이후 10년에 걸쳐 지속된 스태그플레이션에서 탈출하겠다는 의도였다. 개인소득세 최고세율을 70%에서 28%로 대폭 삭감하고 법인세율을 48%에서 34%로 낮췄다. 레이건 집권 초기 5년간 감세 규모가 7,500억달러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레이거노믹스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단 소비와 일자리가 늘고, 임기말 3.5%의 성장률을 보이는 등 침체의 터널은 벗어났다. 1990년대 클린턴 행정부가 누렸던 호황의 뿌리가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반면 기대했던 만큼의 투자 확대나 세수 증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80년대 중반부턴 부작용도 가시화했다. 감세로 인한 과잉 소비로 무역적자가 심화했고 더욱이 냉전체제 속에서 군비 지출이 급증하면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고질적인 쌍둥이적자를 키웠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현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집권 초부터 추진해온 감세정책 덕분에 마이너스 성장은 모면했지만 대신 재정에 주름을 깊게 새기고 말았다. 소득세율 인하(최고세율 39.6%→35%)와 단계적 상속세 폐지의 혜택은 주로 고소득층에게 돌아갔고, 증세정책을 쓴 클린턴 정부가 가까스로 흑자로 전환한 재정수지는 2002년부터 적자로 돌아서 2004년 사상 최고치인 4,130억달러를 기록했다.
일본도 버블 붕괴 후 1994년, 98년, 99년 3차례에 걸쳐 소득세 특별감세 및 세율인하(최고세율 50%→40%), 법인세율 인하 등 감세 위주의 세제개혁을 단행했다. 소득세에서만 94년 이후 9년간 약 44조엔의 감세가 이뤄졌지만, 정부의 의도와 반대로 국민들은 장기 불황에 대비 늘어난 가처분소득을 저축으로 쌓아두기만 했다. 이 '잃어버린 10년'동안 감세와 재정지출 확대를 병행한 결과, 일본은 선진국 가운데 최악의 재정구조와 나라 빚(국내총생산(GDP)대비 180%)을 짊어지고 있다.
감세정책의 성공 케이스로는 아일랜드 정도가 꼽힌다. 아일랜드는 47%에 달한 법인세율을 12.5%까지 낮춘 파격적 감세정책에다 유연한 노동시장 등 투자 여건이 좋아지면서 외국인 투자유치에 성과를 내면서, 지난 10년간 유럽연합(EU) 평균의 3배에 이르는 경제성장을 이뤄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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