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일본 도쿄(東京) 외환시장. 오전 7시께 달러당 91엔대로 초강세를 보였던 엔화는 오전 9시를 조금 지나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금융ㆍ재무담당 장관이 외환시장 개입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94엔대로 뚝 떨어졌다. 이어 정오께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의 이례적인 엔화 급등 우려 성명이 발표되고 1시간 남짓 94엔대의 진정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오후 들어서면서 다시 오르기 시작해 별로 망설이지도 않고 다시 92엔대로 뛰어 버렸다.
엔화가 상승 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24일 런던 시장에서는 한때 엔화가 13년 2개월만에 달러당 90.87엔을 기록했다. 엔화는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가치가 떨어지는 유로화에 대해서도 계속 강세를 보이며 28일 116엔대에 거래됐다. 이런 추세가 이어진다면 사상 최고인 95년 4월 79.75엔에 육박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금융 불안으로 각국의 통화 가치가 추락하는 바람에 달러는 금융 위기의 진원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약세가 아니다. 유로화나 파운드는 금융 위기의 시련을 미국 못지 않게 겪고 있는 데다 그 동안 너무 올랐다는 평가까지 작용해 팔자 우선이다. 유독 엔화만 상승 행진을 멈추지 않는 데는 일본이 상대적으로 금융위기의 영향을 덜 받고 있다는 안정감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해외 투자가들은 바닥 없이 추락하는 주식시장에서 빠져 나와 너도나도 엔화를 사들이고 있다. 펀드와 투자은행들이 저금리의 엔화를 빌려 고금리의 해외 통화나 금융상품에 투자해 차익을 챙기는 ‘엔 캐리 거래’를 중단해 줄줄이 엔화 갚기에 나서는 영향도 크다. 일본내 기관, 개인투자가들 역시 해외 금융자산이나 투자신탁을 해약하고 엔 사들이기에 바쁘다.
일본 정부로서는 외환시장에 개입해서라도 엔화 급등에 제동을 걸어야 할 형편이지만 문제는 효과가 얼마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이다. 일본이 엔화를 팔고 달러를 사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일본이 G7을 끌어들여 엔화 급등에 “적절히 협력한다”며 외환시장에 공동 개입할 것 같은 성명까지 내도록 손을 쓴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금융위기에 이어 기업 부실로 머리를 싸맨 미국이 국내 자동차업계의 반대를 무릅쓰고 엔고 저지에 적극 협력할지는 의문이다. 경기 침체가 불을 보듯 뻔한 유럽 역시 유로화 약세가 역내 기업의 수출을 자극하는 효과 보기를 원할 게 분명하다. 자국 통화 방어에 전전긍긍하는 나라들이 자국과 처지가 정반대인 일본과 공조해 달러를 사들일 가능성도 낮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미국, 유럽이 금리를 더 내리면 엔고 추세는 더 강해질 것”이라며 “외환딜러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더라도 엔고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 조사에 따르면 주요 금융기관 전문가들은 대부분 엔화가 달러당 83~85엔까지 더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아침 지하철 훈남~알고보니[2585+무선인터넷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