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가 감을 보내왔다. 그리 크지 않지만 달콤한 단감이다. 아내는 이 감으로 곶감을 만들 수 있냐고 해서 그냥 웃고 만다. 곶감은 떫은 감으로 해야 맛이 나는데 도시 태생인 아내가 모른 탓이다. 중국에 있었다면 이런 에피소드도 없었겠지 하는 가벼운 기쁨이 나를 즐겁게 한다.
9년여의 중국 생활을 마치고 올해 초 귀국했다. 9년여의 생활은 얼마 전에 낸 <죽기 전에 꼭 가 봐야 할 중국 여행지 50> (랜덤하우스 발행) 등 지금까지 낸 10권의 책에 담겨 있다. 톈진과 베이징에서 보낸 중국 생활은 어찌보면 롤러코스터에 탄 시간 같았다. 갈 때만 해도 중국의 위상이 세계 양대 헤게모니로 성장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중국에 있을 때 중국은 매년 10%의 고성장을 하면서 질주했다. 죽기>
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중국은 올림픽을 유치했고, 성공적으로 치렀다. 나는 그것을 기록하고 싶어서 책과 방송, 기고 등으로 중국에 접속했다. 가장 바쁘고 세밀하게 중국에 접속했다고 자부하지만 나는 아직 중국을 제대로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사실 우리나라에 비해 면적이 수십배고, 역사 또한 길고, 민족 또한 다양하니 어떻게 중국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나를 중국통(中國通)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래도 통할 수 있는 것은 각 지역을 다니면서 먹어본 술은 많으니 '중국술통' 정도로 불러주면 고맙겠지만, 수천 종에 이르는 중국 바이주(白酒ㆍ고량주)나 황주, 맥주를 다 먹어봤을 리 만무하니 이도 과분한 표현이다.
주마간산이었겠지만 중국과의 접속은 나에게 소중한 시간이었다. 답답한 일도 많다. 중국으로 떠날 때가 IMF의 어려움이 막 가셔갈 무렵이었는데, 돌아오자마자 다시 경제위기가 닥치는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깝다. 여행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올해 티벳 사태, 쓰촨 지진, 올림픽, 환율 등 악재가 연속되는 것도 슬프다. 얼마 전 우리 콘텐츠 전문가들을 모시고 상하이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들은 모두 2010 상하이 엑스포가 단순한 대외행사가 아니라 중국을 위기에서 건져줄 초대형 행사임을 감지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렇게 보고 가야 할 좌표도 없다.
고향 마을이 떠오른다. 나도 도연명처럼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하지만 어쩌랴, 내게는 아직 '귀거래사'조차도 도연명이 세상을 치유하고파 토해냈던 절절한 외침으로 읽히는 것을.
조창완ㆍ알자여행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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