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근무 5시간(오전 10시~오후 3시), 근심을 녹이는 호젓한 녹지와 온몸을 감싸는 청춘의 기운, 정년보장과 박하지 않은 연봉, 대학원 진학 지원 등 살가운 복지혜택…. 오, 아름다워라!' 대학 교직원은 '신이 내린 직장' 목록에서 늘 빠지지 않는다. 세간엔 '알짜' 보직들의 감춰진 천국으로 통한다.
그러나 햇살처럼 공평한 신의 은총이 살짝 비껴간 부서가 있으니 바로 입학 관련 팀이다. 교직원 사회의 기피부서 1순위로 낙인이 찍혔지만 행여 솟구치는 소명의식이 발길을 이끈다 해도 막상 아무나 진입할 수 없는 역설이 존재하는 공간. 그리하여 입학 팀 직원들은 "다시 태어나면 피해가고 싶은 3D업무"라는 푸념을 그토록 자신(?) 있게 말하는가 보다.
박인호(46) 팀장, 안상욱(40) 손병호(40) 최민이(36) 과장 등 한성대 입학정보팀도 '빛나는 3D=입학 업무'의 공식을 설파했다. 저녁 7시가 넘은 시간에도 업무는 한창이다. 코앞에 다가온 대입 때문이다.
10년째 숨막히는 입시 악몽
장수생(長修生)보다 더한 공포다. 차라리 몇 년 바짝 대입 준비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게 낫다. 최 과장은 1996년 한성대에 입사한 뒤 벌써 10년째(다른 부서 근무 제외) 색다른 입시전쟁을 치르고 있다. 도무지 끝은 안보이고 부담은 해마다 새롭게 짓누른다.
우선 변화무쌍한 입시제도 때문이다. 거의 매년 미로처럼 복잡해지는 대입 전형유형에 맞춰 교내 입학일정 및 대입 전형을 기획하는 일은 피 말리고 땀 쏟아내는 고역이다. '계획 수립 및 확정(3월)→편입(8월)→수시 2학기(9월)→수학능력고사(11월)→본격적인 원서접수(12월)→합격자 발표 및 등록(1~2월), 그리고 다시 3월…' 등이 쳇바퀴 돌 듯 일상을 조여 온다.
법전보다 어렵고 복잡하다는 모집요강은 어떤가. 최 과장은 "진학교사나 부모, 학생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50페이지 분량의 모집요강 속 숨어있는 1인치를 발견해 정확한 컨설팅을 하려면 관련 정보뿐 아니라 교육과학부 등 외부기관과의 협조 사항도 꼼꼼히 점검해야 한다"고 했다. 확인에 확인을 거듭하는 건 입학정보 팀의 숙명이자 '직업병'이다. 전화 상담에 인터넷 답변, 우편물 발송까지 도맡는다.
사소한 실수도 쥐약이다. 한 사람의 인생이 걸린 문제라 "인간이 하는 일인데 어떻게 100% 완벽해?"라는 변명은 낄 틈이 없다. 중간에 전산상 오류라도 발견되면 그간 쌓은 데이터 등 모든 걸 폐기처분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박 팀장은 "합격이 누락되거나 순위가 뒤바뀌는 일은 상상하기도 싫다"면서 "만약 순간의 실수로 문제가 생기면 그간 고생이 물거품 되는 건 물론이고 학교 전체 이미지까지 깎아 내릴 수 있어 늘 긴장의 연속"이라고 강조했다. 덕분에 입학정보 팀은 기피부서 임에도 불구하고 업무처리 능력이 탁월하지 않으면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곳이다.
독특한 업무특성상 주변에서 인심을 잃은 지 오래다. 수험생에겐 당락이 결정되는 합격통지 날(보통 연말부터)이 지난한 입시의 종착역이겠지만, 입학정보팀에겐 새로운 고역의 시발점이다. "합격 여부에 대해 불만이라도 접수되면 비상"(안 과장)이기 때문이다.
"우수한 학생을 뽑아야 한다는 압박에 정원이라도 미달이 되면 스트레스 제대로"(손 과장)다. 등록마감 직전 미달을 막기위해 추가합격자에게 자정 넘어 전화하는 일도 발생해 꼬박 밤을 새기도 한다.
마음의 여유를 찾는 연말연시에 그들은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는 셈이다. "친구들이 안 만나주고 시집도 못 가고"(최 과장), "오히려 일찍 귀가할 때 집에 전화하고"(박 팀장) "아이들이 크리스마스(마감 다음날이라 정상근무)를 잊은 지 오래"(안 과장) 일 정도다.
냉정과 인정 사이
늘 최선을 다하지만 인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있기 마련이다. 예컨대 몇 년간 특정 대학, 학과를 위해 준비했지만 결국 자격조건이 되지 않아 지원조차 할 수 없거나, 점수는 되는데 다른 조건 때문에 불합격하거나, 추가 합격했는데 짧은 기간동안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경우 등이다.
수많은 사연을 안고 학부모와 학생들이 직접 입학정보팀을 찾아와 매달리지만 어쩔 수 없다. 아니 "공정하고 정확해야 할 대입 제도나 시스템이 융통성과 측은지심을 발휘하는 순간 피해자가 나온다"(박 팀장)고 했다. 딱한 사연만 놓고 본다면야 당장이라도 들어주고 싶은 심정이지만, 제도의 틀 안에서 움직이는 다른 수험생을 위해선 철저하게 냉정을 유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인정이 개입되는 순간 전체가 어그러진다.
욕도 많이 먹는다. 안 과장은 "계획하고 집행하는 부서다 보니 원칙에 어긋나는 걸 들어주지 못할 때는 (상대로부터) 고압적이고 불친절하다는 비난도 많이 받는다"면서 "공정한 잣대여야 모두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는 만큼 부디 이해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다고 사방이 꽉 막혀있지는 않다. 제도와 시스템이 허락하는 한 운신의 폭을 최대한 넓힌다. 말 못할 장애 때문에 망설이는 학생에겐 지원부터 시험당일 편의까지 살뜰하게 챙겨주고, 미처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학생에겐 십시일반 돕기도 한다. 숨막히는 업무와 해결이 불가한 민원에 시달리면서도 자긍심을 잃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위에서 고생을 알아준다"(박 팀장), "입시 담당자는 전형이 복잡해져서 죽을 맛이지만 수험생은 그만큼 많은 기회를 누릴 수 있게 돼 한편으론 뿌듯하다"(최 과장), "매년 3월 내가 뽑은 신입생들이 캠퍼스를 누비는 걸 보면 피로가 풀린다"(안 과장) 등 저마다 보람도 있다.
그래도 어머니는 입시 때만 되면 과년한 딸(최 과장)에게 일 그만두라고 득달이다. "엄마, 내가 살아온 날(1만3,000여일)보다 내 손으로 뽑은 대학생 수(1만6,000명)가 더 많아요. 천직(天職)이라니까요."
고찬유 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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