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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묻지마 살인' 왜 잦아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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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묻지마 살인' 왜 잦아졌나

입력
2008.10.2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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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발생한 고시원 참극은 어지간한 일에는 놀라지도 않는 우리 국민들을 충격에 빠져들게 했다. 6명이 숨지고 7명이 크게 다쳤을 뿐만 아니라 불을 지른 후 살겠다고 뛰어나오는 사람을 흉기로 무참하게 살해한 천인공노할 범죄이기 때문이다. 억울한 죽음에 차이가 있을 수는 없겠지만 피해자의 대부분이 어렵사리 사는 중국동포여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

개인적 절망이 주요인이지만

지난 1년 간 유사한 '묻지마 범죄'가 적잖게 발생했다. 8월 15일 홍제동 모 초등학교 앞에서 발생한 살인, 7월 22일 강원 동해시청에서 일어난 공무원 살해 사건, 또 4월 26일 강원 양구군에서 발생한 여고생 살해 사건, 2006년 3월 발생한 봉천동 세 자녀 살해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용의자들의 면면을 보면 대부분 30대 실직자나 무직자가 많다. 또 세상과 자신에 대한 불만, 많은 사람들에 의해 억압된 감정이 왜곡된 형태로 발산된 범죄처럼 보인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식하고 감정을 제대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된 정신적 결함이 있는 사이코패스들의 범죄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 같은 개인적 결함으로 설명하는 진단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희망이 좌절된 젊은이는 요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건의 용의자와 환경과 처지가 비슷한 사람도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이런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았다. 그런데 왜 이 같은 범죄가 요즘 급증하고 있을까. 개인 특성으로는 설명되기 어려운 사회구조적 요인이 있을 것이다.

어떤 범죄학자는 폭력범죄, 특히 흉악범죄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무너진 정의에 대한 나름대로의 심판 혹은 복수"라고 한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이 적지 않게 생긴다. 그러나 법으로 해결하기가 어려울 수도 있고, 법에 호소해도 가해자가 속 시원할 정도로 처벌을 받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 대안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개인적 복수 혹은 개인적 정의 실현일 수 있으며, 적지 않은 폭력성 범죄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탐욕스러운 금융 자본가들이 만든 금세기 최대 사건이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며 대공황보다 더 심각한 사태로 번지고 있는 사건의 처리 과정을 보면 울분을 금할 수 없다. 억대 연봉은 기본이고 수십억, 수백억 연봉을 받았던 사람들, 회사가 망해도 수백억 퇴직금을 받은 CE0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신이 내린 직장'의 연봉은 회사 실적과 무관하게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런 사람들이 저지른 과오를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막아야 하나 하는 생각에 울화가 치민 나머지 "광화문 네거리에 세워놓고…" 식으로 응징하고 싶은 충동이 생길 수 있다. 필자처럼 중산층에 해당하는 사람이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면 더 소외된 사람들은 오죽하랴.

앞길이 창창한 젊은 나이에 극단적 좌절을 경험한 사람이 그 원인을 자기의 무능력이 아니라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서 찾을 때, 그럼에도 이런 불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 역시 완전히 닫혀 있다고 생각할 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묻지마 범죄'일 수 있다.

사회가 정의롭지 못한 게 문제

물론 '묻지마 범죄'가 이런 이유로 합리화 혹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흉악한 범죄가 사회 정의를 회복하기는커녕 세상을 더 불안하게 만들었고, 희생된 사람들을 보면 범죄자보다 더 소외된, 그러면서도 더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해온 힘없는 민초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들이 우리 사회를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않는 한, 희망이 좌절되고 소외된 사람들을 배려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는 한 이런 범죄는 계속될 것 같아 걱정이다.

김준호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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