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에게 선비는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을까. 앞뒤 꽉 막힌 도덕군자의 갑갑함이거나 나귀 타고 오솔길 거니는 기려도(騎驢圖) 속의 신선 같은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학자들은 되살려야 할 한국의 정신유산으로 선비의 실천적 면모에 주목한다. 선비정신의 의미를 조명하고 그 계승 방향을 모색하는 학술대회 '선비와 선비정신'(주최 남명학연구원)이 24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렸다.
기조발표를 한 이장희 전 성균관대 교수는 "선비는 신분차대를 당위적으로 받아들이고 복고풍을 숭상해 진취성이 결여된 점 등 부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전제하고 "그러나 출처거취(벼슬에 나아감과 들어앉는 것)를 분명히 한 점, 왕에게 거슬리는 말이라도 서슴지 않고 간언한 점 등은 본받아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고 강조했다.
최봉영 한국항공대 교수는 선비의 한국적 정체성에 주목, "조선 선비들은 공자, 주자의 이학(理學)을 공부했지만 밖에서 가져온 이론을 조선의 현실에 풀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씨름했다"고 말했다.
'남명(南冥) 조식(曹植)의 도학적 세계관'에 대한 설석규 경북대 교수의 발표는 선비에 덧씌워진 보수성과 은둔의 이미지를 깨뜨렸다.
설 교수는 "조식은 리(理)와 기(氣)가 대립적 관계에 있다고 보고 악으로 흐를 수 있는 기를 궁극적으로 소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고 그의 형이상학적 세계관을 요약한 뒤 "이는 적극적인 개혁의지를 표명하며 현실의 모순과 타협을 거부하는 극단적 면모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설 교수는 훈척정권을 혁파하는 데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임진왜란 당시 의병운동의 중심이 되는 남명학파의 적극적ㆍ저항적 면모에서 선비정신의 뿌리를 찾았다.
조영달 서울대 교수는 오늘날과 조선시대의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지성집단을 각각 지식인과 선비로 보았다. 조 교수는 "선비는 현실정치에 깊은 관심을 지닌 지성이었으며 적극적으로 나서는 비판자이자, 문명사적 개척자로서의 기능과 사회적 균형추로서의 지성을 동시에 지닌 존재였다"며 그 역할은 현대의 지식인에게도 요구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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