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새로운 국가 성장 패러다임으로 제시한 ‘저탄소 녹색성장’이 선언 두 달여 만에 흐지부지될 위기에 놓였다. 글로벌 경기 침체라는 암초에 부딪혀 정부 정책 및 기업 투자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는데다, 유가 폭락으로 신(新)재생에너지에 대한 매력도 크게 떨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이 8ㆍ15 경축사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하자, 주무 부처인 지식경제부 2주일 뒤인 8월 27일 ‘국가에너지기본계획’을, 이어 9월 11일엔 ‘그린에너지산업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22일에는 에너지와 환경 등을 중심으로 한 차세대 신성장동력 22개 분야도 선정했다. 국무총리실 산하 기후변화대책위원회도 9월 19일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을 내 놓았다.
그러나 이후 더 이상의 청사진이나 구체적인 실천계획은 나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확산되며 장기 과제일 수 있는 저탄소 녹색성장은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사실 최근 국가 정책의 최우선 순위는 금융위기가 실물 경제로 확산되는 것을 막는 데 집중되고 있다. 수출로 버티던 우리로선 당장 발등의 불을 꺼야 할 상황이다.
기업들로서도 경영 환경이 극도로 불투명해짐에 따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저탄소 녹색성장에 선뜻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은 형국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금은 어떻게 하면 망하지 않고 살아 남느냐가 가장 절박한 문제”라며 “미래 성장동력 확보 차원에서 녹색전략을 준비했던 것은 사실이나, 이를 언제 실행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고 말했다. 최근 한 기업은 보도자료까지 돌린 태양광발전소 준공식도 연기했다.
더욱 큰 문제는 그 동안 국제 유가가 폭락, 신재생에너지 개발의 경제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점이다. 올해 7월만 해도 국제 유가는 배럴당 140달러대까지 치솟았고, 이 대통령이 저탄소 녹색성장을 선언한 8월까지도 110달러대를 지켰지만 최근 60달러대까지 급락했다.
우리나라에서 주로 수입하는 중동산 원유의 기준인 두바이유는 56.47달러까지 떨어진 상태. 통상 국제 유가가 60달러 밑으로 내려가면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경제성과 사업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상황이 이렇게 돌변하자 저탄소 녹색성장의 추진 주체가 될 조직 구성 및 조직 개편 등도 전부 중단됐다. 녹색성장을 효율적으로 추진하려면 먼저 지식경제부 내 국별로 흩어져 있는 에너지 관련 부서를 한 데 모아야 한다. 하지만 행정안전부가 전체 인원이 늘어날 것을 우려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총리실과 지경부, 국토해양부, 환경부가 서로 녹색성장 정책의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도 발목을 잡고 있다. 이윤호 지경부 장관이 최근 “에너지 관련 부서의 조직 개편 등에 관한 이야기가 외부에 나가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했을 정도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 대통령의 ‘저탄소 녹색성장’이 국면 전환용 구호에 불과했다는 지적을 피하려면 정부에서 지속적인 추진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며 “경제 상황이 어려워진 만큼 녹색 성장 추진 기업들에 대해 더 과감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저탄소 녹색성장 일지
8월15일 - 이명박 대통령, 저탄소 녹색성장 선언
8월27일 - 국가에너지기본계획 발표
9월11일 - 그린에너지산업 발전전략 발표
9월19일 - 기후변화대응 종합기본계획 발표
9월22일 - 신성장동력 22개 분야 선정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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