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마음도 시궁창이 됐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주식 투자가 인생 최대의 실수였습니다." "연로한 부모님은 저만 믿고 사시는데, 너무너무 죄스럽네요."
증권 관련 인터넷 사이트나 카페 게시판에 쏟아진 개미 투자자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주가가 연일 추락하면서, 투자자들은 공포와 후회 등이 뒤섞인 '패닉' 상태에 빠졌다.
등록금을 마련하려던 대학생, 결혼 자금을 불리려던 예비 부부, 안정된 노후를 약속 받았던 노부모까지, 증시나 펀드에 발을 담갔던 이들의 가슴은 증시 전광판보다 더 파랗게 멍들고 있다.
■ "안전하다던 직원 말만 믿었는데…"
주식의 '주'자도 모른 채 은행 직원 말만 믿고 펀드에 들었던 서민들의 분노와 좌절감은 극에 달했다. 마산에 사는 이모(80)씨는 평생 모은 돈 3억원의 절반 이상을 날려 요즘 식사도 못한 채 넋이 나가 있다.
"대한민국이 있는 한 안전한 상품"이라는 은행 직원 말만 믿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 이씨가 2005년 말 정기예금에서 펀드상품으로 갈아탄 것은 "예금보다 안전하고 수익률은 더 높다"는 직원의 끈질긴 권유 때문이었다.
관절염, 심장병으로 고생하는 아내에 실직한 아들 내외까지 네 식구가 군인연금 120여만원에 의존해 살며 펀드 자산이 늘기만 고대하던 그는 올 7월에야 3억원이 1억3,750만원으로 반토막 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씨는 "손실이 이렇게 커지는 동안 은행에선 전화 한 통 없었다"고 울먹였다.
지난해 3월 증권사 직원 추천으로 퇴직금 2억원 중 1억 5,000만원을 펀드 2곳에 넣었던 조모(52)씨도 허탈감에 빠졌다. 2년 정도 불려 아들(31) 결혼비용과 노후 자금으로 쓸 생각이었지만 펀드 수익률은 각각 -52%와 -48%로 8,000만원도 채 남지 않았다. 조씨는 "상품을 팔 땐 위험에 대해 아무 얘기도 없다가 이제는 장기투자 하라는 말만 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부모 몰래, 남편 몰래 투자했다 속앓이
살림에 보태기 위해, 혹은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 부모 몰래 펀드나 직접 투자에 나섰던 이들은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다. 주위에 말도 못하고 그저 주식시세표만 쳐다보며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2,000만원을 투자해 한때 쏠쏠한 재미를 봤던 30대 중반의 주부 김모씨는 원금은커녕 대출금 1,000만원까지 날릴 판이다. 손해를 만회하려 중간에 대출까지 받아 물타기를 한 것이 화근이었다. 김씨는 "기름값도 아까워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남편에게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지난해 군 제대 후 틈틈이 모은 600만원을 날린 대학생 한모(25)씨도 부모님에게 속사정을 말하지 못한 채 이번 학기를 휴학하고 아르바이트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부모님도 펀드로 전 재산의 절반을 날려 손을 벌릴 수 없었다"고 했다.
결혼을 앞둔 무역회사 직원 정모(28ㆍ여)씨는 지난해 매월 90만원씩 납입하는 적립식 펀드 상품에 가입했다가 급기야 반토막이 났다. "원금 손실이 너무 커 환매도 할 수 없어요. 결혼자금이 날아갔는데, 남자친구에겐 아직 말할 용기가 없어요."
■ 흉흉한 증권가, 뿔난 개미들
바닥을 모른 채 무너지는 증시로 여의도 증권가는 초토화했다. 객장은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지만 전화통은 고객들의 항의 전화로 몸살을 앓고 있다.
G증권사의 양모(34) 펀드매니저는 "전화를 걸어서 다짜고짜 욕을 하거나 잃은 돈 물어내라고 고함치는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종업계 직원의 잇달은 자살 소식까지 겹쳐 초상집이 따로 없다"고 암울한 분위기를 전했다.
은행이나 증권사 권유로 펀드나 주식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본 일부 개미 투자자들은 "더 이상 못참겠다"며 집단 소송에 나서고 있다. 인터넷에는 집단소송 카페 10여개가 속속 개설됐고 가입자 수가 크게 늘고 있다.
이들은 "증권사나 은행들이 '나라가 망하지 않는 이상 원금 손실 없는 국고채에 관한 투자'라고 해놓고 반토막 나자 모른 체 한다"며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대혁 기자 selected@hk.co.kr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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