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의 한복판에서 통화 전쟁이 한창이다. 1944년 브레튼우즈 체제 성립 이후 세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미국이 금융 위기로 흔들리면서 세계 통화의 중심 역할을 해온 달러에 대한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 특히 유럽의 강국들은 미국의 금융 혼란을 틈타 유로화의 위상을 높이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달러에 기축통화로서의 독점적 지위에서 물러나든지, 기축통화의 경제적 파워를 나눠 갖자는 요구다.
하지만 달러는 요지부동이다. 미 금융시장과 실물경제가 쑥대밭으로 변하고 있는데도 달러 가치는 오히려 폭등하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공포에 휩싸인 시장 참여자들이 그나마 달러를 안전 자산으로 여기고 앞 다퉈 찾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가 여전히 세계의 기축 통화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축 통화의 패권을 둘러싼 유럽의 도전과 미국의 응전은 다음달 15일 미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AP 통신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다음달 15일 미국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담에서 달러 중심의 브레튼우즈 체제를 전면 수정할 것을 제안할 예정”이라며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제안에 동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新) 브레튼우즈 체제를 구축해 달러 중심의 기축통화 체제를 유로화가 포함되는 다극 기축통화 체제로 바꾸려는 생각을 구체화하겠다는 뜻이다. 이를 위해 이들 3국 정상은 이미 이 달 중순 벨기에 브뤼셀의 EU 정상회담에서 신 브레튼우즈 체제 구축을 주제로 논의하는 등 전의를 불태우고 있다.
유럽연합(EU) 순회의장을 맡고 있는 사르코지 대통령은 1,000억유로(약 180조원) 규모의 국부펀드를 설립한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유럽의 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은 유럽의 경제를 보호해 유로화를 지키려는 배경이 깔려 있다고 AP통신은 분석했다.
사실 유로화 가치가 달러를 앞서기 시작했다는 증거는 이미 감지돼 왔다. 유로화 대비 달러는 2005년 11월 7일 1. 17달러에서 꾸준히 상승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확산되기 시작한 7월에는 1.58달러로 3년만에 35% 가량 치솟았다. 유럽연합(EU) 회원국의 인적, 물적 교류가 활성화되는 등 EU통합이 결실을 맺고 있는 데다 미 경제가 쌍둥이 적자 등으로 침체를 맞으면서 반사 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달러 발권력을 비롯한 기축통화로서의 이점을 누려온 미국은 대응책에 나서고 있으나 딱히 방법이 없어 고민이다. AFP통신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호세 마누엘 바로수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위원장,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와 회담하는 등 유럽 정상과의 관계 강화에 나섰다”면서도 “달러 파워의 근간이 되는 미 경제가 침체하고 있어 장기적으로 달러화가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브레튼우즈 체제 결성 이후 60여년 동안 기축통화로 군림해온 달러화의 지위가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의 배리 아이첸그린 교수는 “1920년대 중반 달러가 영국 파운드화를 잠시 제치고 리딩 통화로 부상했다가 30년대에 다시 파운드화에 자리를 물려줬다”며 “달러가 도전자인 유로화에 대해 갑작스럽게 지위를 물려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이첸그린 교수는 “결국 달러의 수명이 얼마나 길어지느냐가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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