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는 작품의 옷이다. 갤러리의 조명과 깨끗한 벽면, 깔끔한 플로어는 그림을 더욱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작가들은 반듯한 갤러리에서 전시하기를 원한다. 나 역시도 전시장을 고르는 데 신중을 기하게 되지만, 성격상 거절을 잘 못하다 보니, 내 그림이 좋다고 하는 데서는 대개 전시를 했던 편이다.
이번에 전시 초대를 받은 곳은 한 병원의 갤러리이다. 큰 규모의 종합병원이다 보니 내부 시설이 어느 갤러리 못지않게 깔끔하고 공간도 넓다. 하지만 컬렉터나 미술애호가, 화랑관계자, 화우들이 출입하는 전문 갤러리는 아니다 보니, 처음엔 전시가 망설여졌고, 주변에 전시한다는 얘기조차도 꺼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내 어리석고 부끄러운 생각이었음을 느끼게 되었다. 병원 외래 진료시간이 마감된 후 전시 설치를 마치고 돌아서는데, 한 중년의 신사가 노부를 태운 휄체어를 밀며 그림 앞에 서는 것이었다. 노부의 목과 시선은 그림을 보는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기도 어렵지만, 그 신사는 한 작품 한 작품 그 앞에 멈춰 서며 노부에게 그림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도 휄체어에 탄 할머니에게 그림을 보여준다. "와. 꽃이네. 참 좋지? 참 좋지?" 느리게 아기를 달래듯 나지막하게 말하는 목소리가 내 귀에도 들려온다. 환자복의 할머니는 기운이 없는 듯 대답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살포시 미소 짓는다. 친정아버지가 너무 오래 입원해 계시는데 그림 보니 좋다며 눈물을 비치는 분도 있다.
힘들어 보이는 모습인데도 링거대를 끌고 그림 앞에 한참을 서있는 청년, 목발을 짚고 절룩절룩 그림 앞에 다가가서는 휴대폰 카메라를 드는 아주머니. 흰 가운의 의사와 유니폼을 입은 병원의 스탭들까지. 일반 외래 환자들과 병문안을 위해 온 사람들이 관람을 하기도 하지만, 특히 줄무늬 환자복 차림과 의사들의 흰 가운은 참 묘한 느낌을 준다.
그림의 가치가 무엇일까. 메이저급 갤러리에서 유명한 평론가나 화랑 관계자나 컬렉터나 매스컴의 주목을 받는 것 보다 이렇게 가장 위로 받고 싶어 하고 평안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낮은 자리에서 영혼을 어루만져 줄 수 있는 것이 그림의 숭고한 가치는 아닐까. 갤러리가 옷인 것은 맞다. 그런데 정말 병원에서의 전시는 어느 곳에서도 비할 수 없는 멋진 옷을 입은 셈이다.
개인 병원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경우가 간혹은 있지만 큰 규모의 종합병원에서 갤러리를 갖추고 있는 예는 찾기 힘들다. 가벼운 상처에서 목숨이 달려 있는 일까지 사뭇 심각해지고 긴장되는 일이 대부분인 병원에 갤러리가 있음이 감사하고, 그곳에서 그림의 역할이 있음을 분명히 깨닫는다.
언젠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찾아가는 미술관> 을 본 적이 있는데, 문화를 가까이 접하기 어려운 곳, 소외계층과 낙후된 곳을 찾아가 전시회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런 프로그램들도 더 많아졌음 싶다. 적어도 큰 종합병원과 같은 곳이나 국가에서 운영하는 기관들에는 갤러리의 공간이 쉼터처럼 마련되고, 그곳에서 미술의 역할과 미술의 가치를 키우는 일들이 더 많이 만들어졌음 싶다. 찾아가는>
마지막으로 삶에 있어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던 순간이, 지나고 보면 가장 가치 있는 순간이었다고 생각들 때가 있다. 힘들었던 순간 앞에 망막함과 두려움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 그들을 돌보고 지키는 환자의 가족들, 병원의 여러 스텝들. 그들에게 병원에서의 내 그림전이 작은 위로와 기쁨이 되길 바란다.
안진의 한국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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