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와 중국 진시황릉을 소재로 했다니 분명 장황한 이야기일 듯싶었다. 그러나 뜻밖에 내용과 메시지는 명확했다. 22일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에서 막을 올린 극단 물리의 10주년 기념작 '서안화차'(작ㆍ연출 한태숙)는 가질 수 없는 것을 향한 인간 본연의 집착, 그로 인한 좌절과 슬픔을 그린다.
연극은 중국 시안으로 가는 기차 서안화차를 타고 이동 중인 안상곤(박지일)의 독백으로 시작된다. 직장을 그만두고 영원불사의 상징인 진시황의 능으로 가는 여행길에 오른 상곤. 그의 고백에 따라 장면은 일터를 떠나오기 전 그의 일상과 어린 시절, 병마용이 지키는 진시황릉 사이를 자유로이 오간다.
그는 유아기에 부성 결핍을 경험한 중국 혼혈인으로 사춘기에 접어들며 동성애 성향을 띠기 시작하며 친구 찬승(이찬영)에게 강한 애착을 보인다.
중년이 되어 직장인 호텔에 손님으로 온 찬승과 오랜만에 마주한 상곤은 결국 친구를 살해, 진시황의 토용처럼 만들어 버린다. 연극 제목이기도 한 서안화차는 동성애 상대, 즉 소유할 수 없는 것을 향한 상곤의 심경 변화를 또렷이 보여주는 일종의 도구다.
역시 극단 물리의 강점은 세련된 형식미였다. 2003년 첫 선을 보인 '서안화차'는 연출력을 인정받아 초연 당시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던 작품으로, 3년 만에 다시 관객을 찾아왔지만 무대미학의 강건한 생명력은 여전했다.
자그마하지만 천장이 유난히 높은 설치극장 정미소의 구석구석을 경제적으로 잘 활용한 무대는 배우와 관객을 때로 현실로, 때로 과거로, 그리고 타국 땅 중국으로 거침없이 이동케 했다. 독특한 조명과 구음 역시 작은 공간을 다채롭게 변화시킨 힘이었다.
모든 것을 가지려 했던 진시황이 토용들과 함께 한줌의 흙이 됐듯, 찬승을 영원히 소유하려 했던 상곤은 자신의 손으로 죽인 친구를 붙잡고 "날 또 외롭게 만들지 마"라고 울부짖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담담하게 시작된 박지일의 감정 연기는 이 대목에서 소름 끼칠 만큼 다중적이고 복합적이었다. 그의 열연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공연이다.
단출하지만 인상적인 무대, 그리고 유한의 존재인 인간의 삶을 비웃듯 배우들과 함께 마지막 장면을 꽉 채우며 등장하는 토용들의 위용을 제대로 느끼려면 조금 뒷좌석을 선택하는 것이 좋겠다. 11월 2일까지. (02)6405-8881
김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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