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우려보다 더 빨리 그리고 더 심각하게 왔다. 미국발(發) 금융 위기가 글로벌 실물 경제로 확산되며 우리나라 대표 기업들의 실적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다. 물건이 안 팔리자 재고가 쌓이며 감산도 이어지고 있다. 연초 세웠던 투자 계획 등도 철회되기 십상이다. 감산 다음은 감원이라는 점에서 이젠 일자리마저도 안전하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3분기 실적 악화 쓰나미
뚜껑을 연 우리나라 실물 경제의 성적표는 참담했다. 23일 발표된 현대차의 올해 3분기 실적은 매출(6조545억원)과 영업이익(1,045억원)이 전년 동기보다 각각 14.5%, 70.7% 줄어든 것으로 드러났다. 노조 파업으로 인해 회계상 착시 현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수요 감소가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게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4분기부터 실적 악화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다. 장태환 현대차 재경본부장(부사장)은 “미국 자동차 수요가 크게 줄고 있다”고 말했다. 24일 실적을 발표하는 기아차와 GM대우차, 르노삼성차, 쌍용차 등의 전망도 모두 비관적이다.
내수 침체로 유통업 실적도 부진하다. 이날 ㈜롯데쇼핑은 3분기 총매출액 2조6,302억원, 영업이익 1,490억원, 당기순이익 1,227억원을 달성했다고 공시했다. 지난해 동기에 비해 총매출액은 6.6% 늘었지만,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11.4%, 19.3% 감소한 수치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50만원선이 무너지며 7%나 떨어져 47만2,500원으로 마감됐다. 24일 발표될 3분기 실적이 악화할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3분기 영업이익은 2분기(1조8,900억원)의 절반 수준인 9,000억원대로 떨어지며 1조원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삼성전자는 15개월만에 분기별 영업이익이 1조원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삼성전자의 실적 악화는 공급 과잉과 수요 감소로 반도체와 LCD 가격의 하락이 계속되고 있는데다 휴대폰 사업의 영업이익률도 한 자릿수로 떨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유업계도 환율급등으로 인한 환차손이 커 현대오일뱅크 등 일부 정유사의 경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식ㆍ음료 업계 관계자도 “멜라민 파동과 환율 급등으로 인해 3분기 실적은 매우 저조한 실정”이라며 “매출액은 회사별로 차이가 나겠지만, 실제 수익률은 50% 이상 줄어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감산 이어 감원 도미노
이처럼 실적이 악화하자 산업 전반에 감산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가 이미 지난 8월부터 LCD 생산량을 10%를 줄인 데 이어 삼성전자도 최근 LCD 생산량을 5% 감축했다. 반도체에서도 미국의 마이크론, 대만의 파워칩, 일본의 엘피다 등 해외 반도체 업체들이 잇따라 감산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생산량을 30% 줄이기로 한 하이닉스는 아예 미국 유진 공장을 폐쇄하고 직원 1,000명은 전원 해고됐다. 국내 사업장도 청주와 이천 공장의 일부 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생산 인력을 재배치하고 있다.
석유화학업체들도 국내ㆍ외 수요처가 급격히 줄면서 감산에 나서고 있다. 국내 최대 나프타분해업체인 여천NCC는 19일부터 가동률을 80% 수준으로 낮췄고, 롯데대산유화는 다음달 1일부터 가동률을 10% 줄이기로 했다. SK에너지도 이미 울산 폴리프로필렌 생산공장의 가동률이 80%대로 떨어졌고, 에틸렌 생산공장 한 곳의 가동을 아예 중단하는 방안 등도 검토하고 있다. 삼성토탈도 내달중 에틸렌과 합성수지 생산을 10% 정도 줄이기로 했다. 석유화학업협회 관계자는 “현재 남아있는 재고물량이 단기에 해소될 가능성이 적어 감산의 범위와 폭이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강업계도 동부제철이 4분기 감산을 결정했고, 현대제철은 건설수요 감소를 감안해 철근과 H형강의 생산량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조선업계는 아직 수주 물량이 많아 생산을 줄이는 일은 없지만 최근 한달간 수주가 사실상 ‘0(제로)’인 상태로 이어지며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투자계획 보류, 사업계획 차질
연초 투자계획을 세울 당시와는 경제성장률이나 환율 전망 등이 모두 어긋나며 사업계획을 철회하거나 변경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대한전선은 최근 국내 금융시장 불안과 경기침체를 이유로 무주기업도시 건설사업을 사실상 포기했다. 사업성과 수익성, 장래성이 모두 불투명한데다 주주와 은행도 모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이 당초 4파전에서 2파전으로 압축된 것도 미 금융 위기의 여파와 무관하지 않다.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던 중소형 조선사는 투자자금 확보가 불가능해지면서 설비 증설을 중단했고, C&중공업과 대한조선 등은 자산매각까지 추진하고 있다.
산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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