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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엘리자베스 페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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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의 이것이 오늘의 미술!] 엘리자베스 페이튼

입력
2008.10.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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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페이튼(43)은 연예인, 로커, 현대미술가 등 유명 인사들의 초상을 독특한 일러스트레이션 화풍으로 그려 유명해진 미국 화가다.

작은 화폭에 슥슥 빠르고 선명한 붓질로 그려낸 명사들의 모습은 한창 때의 청춘임에도 병자처럼 유약해 보이며, 쓸쓸한 정조의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하지만 이런 그림이 정말 컨템포러리 아트일까?

1990년대 초부터 청년 나폴레옹, 소녀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 시절의 엘리자베스 여왕, 루이 14세 등 역사적 인물들을 그리기 시작한 페이튼은 점차 그룹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비틀즈의 존 레논 등 록스타들의 초상으로 범주를 넓혀갔다.

잡지 등 대중매체에서 스크랩한 이미지에 기반을 둔 그의 초상화엔 원본 사진에선 느낄 수 없는 묘한 친밀감이 있다.

그것은 아마추어 스타일의 필치, 누구든 깡마르게 그리는 의도적인 신체의 변형, 중성화된 얼굴 표현, 그리고 명사를 친구처럼 호명하는 일 따위가 뒤섞인 종합적인 겉멋부림의 소산이다.

페이튼의 그림이 풍기는 야릇한 친밀성의 향취는 1993년 11월에 열린 뉴욕 데뷔 개인전이 갤러리가 아닌 호텔방에서 열렸기 때문에 더욱 선명해졌다. 당시 갤러리 공간을 소유하지 못했던 아트 딜러 개빈 브라운은 전시 장소로 첼시 호텔의 방을 잡았다.

작품을 구경하려면 관람객은 프런트에서 열쇠를 받아 직접 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야 했다. 828호의 벽면엔 현대회화의 범주에 들 수 없을 정도로 일러스트레이션에 가까운 작은 흑백 드로잉 21점이 걸려있었다.

자연히 관람객은 페이튼의 작업 주제가 '소녀적 감수성에 의해 친밀하게 포착된 명사들의 사생활'임을 받아들였고, 미술계의 반응은 기이하게 뜨거웠다. 이어 런던에서는 술집을 전시 공간으로 삼았고, 쾰른에서는 가정집 거실에서 전시를 열었다.

이러한 전략은 효과 만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수많은 화가들이 페이튼의 성공을 관문 삼아 감성적 드로잉 작업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이미 유사한 화풍을 구사한 캐런 킬림닉이 있었지만, 젊은 세대는 그보다는 페이튼과 존 커린, 그리고 리사 유스카비지를 영웅시하며 화가 특유의 필치를 강조하는 회화, 즉 일러스트레이션 같고 다소 아웃사이더 풍이면서 미술계의 유행에 민감한 척하는 구상화풍의 가계도를 일궈 나갔다.

어떤 평자들은 요즘이 "컨템포러리한 것들이 종언을 고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바람이 일었을 때 모던한 것들이 종언을 고했듯, 지금 다시 한 번 동시대성에 심대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페이튼과 그의 추종자들을 '포스트-컨템포러리의 화가'로 분류할 수 있겠다.

미술ㆍ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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