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는 기회의 다른 말이다. 시장점유율 확대에 초점을 맞추겠다."(권영수 LG디스플레이 사장)
"전체 업체가 어려울 때 오히려 공격적인 포지셔닝을 취할 수도 있다."(삼성전자 주우식 부사장)
우리나라 대표 전자 기업들의 위기 극복 전략이다. 상황이 힘든 것은 사실이지만, 좌절하기 보단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각오다. 사실 전자 업계는 지금 사면초가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가전제품 수요가 줄어 수익률이 크게 떨어지고 있고 전망도 불투명하다.
통상 겨울이 성수기였는데, 이번에는 이런 계절적 수요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해외 경쟁업체들이 흔들릴 때 국내 전자 업체들은 치고 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다.
■ LCD, 선제적 투자와 기술력으로 승부
LCD 시장 상황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는 LCD 패널 판매가다. 시장조사기관 디스플레이서치에 따르면 4월 511달러였던 42인치 LCD 패널은 지난달 420달러로 급락했다.
TV 판매 수요가 급감하면서 TV 제조업체들이 LCD 구매량을 줄였기 때문.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며 가격을 끌어내린 것이다. 견디다 못한 대만의 AUO, CMO 등은 올해 3분기에 LCD 출하량을 전분기보다 각각 5%, 6.1% 줄였다.
반면, 국내 업체들의 판매량은 오히려 증가했다. 삼성전자는 소니 등 TV 제조업체들의 꾸준한 수요로 전분기보다 대형 LCD 패널 판매가 늘어 4분기 연속 500만대 이상 판매했다. LG디스플레이도 면적 기준 3분기 제품 출하량이 전분기보다 12% 늘어났다.
비결은 기술력에 있다. 국내 업체들은 일본이 10인치 LCD로 세계를 주름잡던 1990년대 중반 30인치 이상 대형 패널 생산시설에 투자했다. 수요가 많진 않았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승부수를 던진 투자였다.
이후 50인치 이상 8세대 패널도 해외 업체들보다 앞서 내놓았다. LG디스플레이는 휘어지는 LCD와 원형 LCD 등을 개발, 기술력을 과시했다.
삼성코닝정밀유리에서 생산하는 LCD용 유리 기판도 일본 아사히글래스를 누르고 단연 세계 최고 품질로 평가 받고 있다. 절단면을 흠 없이 매끄럽게 자르는 기술은 삼성코닝정밀유리만 보유하고 있다.
결국 시장이 어려울수록 양질의 제품을 선택할 수 밖에 없어, 앞선 기술력의 국내 기업들에겐 오히려 유리해졌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 생활가전, 프리미엄 이미지로 기술공략
세계 최대 가전 시장인 미국에선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사태 이후 소비가 크게 줄고 있다. 올 상반기에 전년 동기 대비 9% 역신장한데 이어 지난달 가전제품 판매량도 전월 대비 1.5% 감소했다. 이 와중에도 국내 업체들은 기술력을 강조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프리미엄 제품을 앞세워 북미를 비롯한 세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LG전자는 매년 생활가전 매출의 5%를 기술 개발에 투자한다. 그 덕분인지 에어컨은 8년 연속 세계 1위, 세탁기는 지난해 1분기부터 미주 시장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냉장고 역시 올 2분기 미국 시장 점유율 23.2%를 기록하며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도 97년 국내 최초로 선보인 양문형 냉장고로 11년간 국내 시장 점유율 1위, 미국 소비자기관 JD파워의 냉장고 부분 4년 연속 1위에 올랐다.
판매 부진이 예상되는 올해 4분기와 내년 가전시장도 최첨단 기술 방식의 제품들로 돌파한다는 전략이다. LG전자 관계자는 "경제가 어려워도 프리미엄 가전 수요는 존재한다"며 "문제는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기술력이 전제되느냐 여부"라고 강조했다.
LG전자는 ▲희망 온도에 도달하면 필요한 만큼만 가동하는 에어 로봇 기술을 적용한 에어컨 ▲세계 최초로 개발한 고농축 세제수와 스팀이 2개의 관에서 동시에 나오는 듀얼 스팀 세탁기 ▲냉동고를 상ㆍ하로 나눈 4도어 냉장고 등으로 승부할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개발해 16개국에 특허 출원한 거품 세탁 방식의 '하우젠 버블 세탁기' ▲사용한 냉매를 한 번 더 사용해 에너지 효율을 높인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어컨 ▲사람이 눈으로 보는 듯한 방식을 세계 최초로 도입한 로봇 청소기 등을 앞세워 지속 성장을 추구할 예정이다.
최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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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계 정부에 지원 요청/ "중국·대만처럼…연구장비에 무관세 적용을"
LCD는 전자업계에서 유난히 경쟁이 심한 분야다. 대만, 일본 등 해외 업체들이 합종연횡으로 '타도 코리아'를 외치고 있어 외풍이 만만치 않다. 업계에선 이를 이겨내려면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표적인 게 제조장비 구매 때 부과되는 관세의 폐지다.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관계자는 "대만과 중국은 비과세 혜택을 주고 있으나, 우리는 장비 구입 때 부과되는 세금이 원가에 반영돼 가격 경쟁력에서 불리하다"고 주장했다.
대만은 2002년 반도체와 박막액정화면(TFT-LCD) 산업을 2조 대만달러(한화 60조원) 규모로 집중 육성하기 위해 '2조 쌍성산업'으로 지정했다. 이를 위해 대만 정부는 법인세 면제와 수입되는 관련 생산 및 연구 장비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중국도 비슷하다. 중국에서 생산할 수 없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산업용 재료에 대해 무관세 혜택을 주고 있다. 특히 2005년 2월 LCD 산업 지원책을 발표하면서 중국에서 생산할 수 없는 클린룸 전용 건축재료 생산 설비에 대해 무관세를 적용했다.
우리나라는 국산화가 안 된 생산 장비에 대해 5.6%, 연구용 장비에는 1.6%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설비투자 규모가 1조원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관세 감면이 커다란 지원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업계 관계자는 "내년에도 LCD 분야에서 기업별로 1조5,000억~2조원 가량 투자가 이뤄질 계획"이라며 "그만큼 관련 장비에 대한 세제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장비 및 부품 국산화를 위한 공동 연구ㆍ개발 지원도 필요하다. 이미 업계에선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 사이에 모니터용 LCD 패널 등을 중심으로 교차 구매가 이뤄지고 있다. 대기업의 교차 구매는 관련 장비 및 부품업체에도 혜택이 돌아가고, 해외에서 사오던 분량을 그만큼 줄일 수 있어 외화 절감에도 효과적이다.
특히 장비 및 부품 개발에는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정부 주도의 체계적인 산ㆍ학ㆍ연 공동 연구가 시급하다. 구자풍 디스플레이협회 전무는 "협회 차원에서 정부에 기술개발 요청을 해놓았다"며 "공동 기술 개발은 대기업 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연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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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전자 DA본부장 이영화 "기술은 가전의 미래… 특허경영 강화"
"생활 가전의 미래는 기술에 달렸다. 앞으로 원천기술 개발 뿐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특허 경영을 강화하겠다."
LG전자에서 생활가전 사업을 총괄하는 이영하 DA사업본부장(사장)은 기술 강화를 통해 경기 침체 위기를 헤쳐나갈 계획이다. 그는 "세계 시장에서 특허 싸움 등 가전업체들의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는 만큼 핵심기술에 대한 연구 개발 투자를 통해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특허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특허 경영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특허 포트폴리오란 특허 경영을 위한 사업전략이다. 이 사장은 "기술을 개발했다고 무조건 특허 등록을 하는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을 한다"고 설명했다. 즉, 시장 상황에 따라 유리한 곳에 특허 등록을 서두르고 기술 보호를 위해 공개하지 말아야 할 경우에는 특허 등록을 늦추는 식이다.
이를 위해 LG전자는 사업전체를 총괄하는 특허센터가 있고, 각 사업부문별로 특허 그룹을 따로 운영하고 있다.
특히 2004년에 미국 가전업체 월풀과 세탁기 특허 소송이 붙으면서 LG전자의 특허 경영이 급부상했고, 최근에는 중국과 중동 두바이 등지에서 쏟아져 나오는 짝퉁 가전 제품에 대한 대응도 특허센터에서 하고 있다. 이 사장은 "특허 관련 인력을 국내외에서 계속 보강하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LG전자가 특허를 강화하는 이유는 시장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이 사장은 "최근 세계 경기 침체로 소비가 줄면서 시장이 영향을 받겠지만 가전제품은 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필수품이 됐다"며 "위기일수록 기술이 뛰어난 제품은 더 팔릴 수 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내년에도 글로벌 가전 시장 규모는 1,800억~2,000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특히 LG전자의 경우 앞선 기술로 에어컨이 8년 연속 세계 1위, 세탁기와 냉장고는 글로벌 톱 3위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이 사장은 "지속적인 기술 개발 결과 세탁기의 다이렉트 드라이브, 냉장고의 리니어 컴프레서 등은 해외 업체들이 모방할 만큼 앞선 핵심 기술"이라고 주장했다.
앞으로 LG전자는 인재 확보, 조직 문화 개선 등을 통해 생활가전 사업의 역량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 사장은 "인재, 일하는 방식, 조직 문화 등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서야 한다"며 "이를 통해 지속적인 시장경쟁력을 확보하고 수요가 급증하는 상업용 에어컨과 에너지 등 신성장 사업을 적극 발굴해 키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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