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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금융권 은행채 공방… 정부까지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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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금융권 은행채 공방… 정부까지 가세

입력
2008.10.2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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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찍어내는 힘(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은 금융시장의 마지막 보루. 그만큼 움직임이 신중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최근 위기가 깊어지면서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야 한다"는 정부와 금융 회사들의 협공이 한창이다. 이들은 한국은행에 대해 은행채 매입을 연일 압박한 데 이어, 23일엔 증권사에까지 유동성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덩달아 논란도 점점 커지고 있다.

업계의 아우성이야 그렇다 쳐도, 지금은 정부까지 앞장서 한은을 압박중이다.

먼저 은행채 매입 요구. 22일 이창용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에 이어 23일에는 임승태 사무처장이 기자실을 방문, "한은이 은행채를 사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최근 은행채 거래가 끊겨 은행들의 자금 조달비용이 높아지고 시중금리가 상승하는 악순환을 한은이 나서 풀어줘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은행들은 다만, 한은이 은행채를 직접 매입할 경우 국내 은행들의 유동성 문제가 심각한 것처럼 비쳐질 수 있으니 현재 한은이 공개시장조작을 위해 사고 팔 수 있는 채권에 은행채를 추가하는 '우아한' 방식을 이날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4분기에 만기를 맞는 은행채 25조원 가운데 정부가 보증하는 산업ㆍ기업은행 채권을 빼면 채권 규모는 13조원에 불과하다"고 매입 '가이드라인'까지 시사했다.

임 사무처장은 이에 더해 최근 펀드런(대규모 펀드 환매사태) 우려로 유동성에 여유가 없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지원방안도 언급했다. 한은이 이들의 통화안정채권이나 국고채를 사주는 방식으로 유동성을 공급해 주는 방안을 "협의하겠다"는 것이었다.

중앙은행으로서는 이 같은 압박이 달가울 리 없다. 현재 한은의 입장은 '최악의 경우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는 것. 이성태 총재는 이날 오전 국정감사에 출석, "25조원 어치를 한은이 모두 매입할 필요는 없다. 중앙은행이 전부 사들이는 것은 매우 극단적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아예 안 된다는 것도 아니지만 요구를 그대로 들어주기도 힘들다는 의미다. 하지만 오후에는 "다른 나라의 경우나 논리를 봐서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조만간 결론을 내겠다"고 말했다. 압박이 심해질 경우, 적절한 타협점을 찾을 수 밖에 없는 한은의 현실을 드러내는 대목이다.

한은의 고심에는 근거가 있다. 우선 은행채의 위험성. 대개 중앙은행은 돈을 풀더라도 반드시 담보를 잡는데 은행채는 담보가 없다. 한은이 시장 대신 은행채를 사줄 경우, 상당기간 시장기능이 실종될 수 있다. 또 "왜 은행채만 사주냐"는 다른 업종의 특혜시비나 도덕적 해이 가능성도 우려된다. 한은 내부에서는 "금융당국이 이 같은 부작용은 놔둔 채, 극단적인 조치를 요구해 오히려 시장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결정권은 금융통화위원회에 있는데 금융위가 월권행위를 한다" 등 불쾌감을 높은 상태다.

결국 문제는 사태가 얼마나 심각하냐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의 의견도 갈린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성태 선임연구원은 "은행들의 자금압박이 극심하다면 콜금리 같은 단기금리도 올라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국제적인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 조치에 편승하려는 인상이 짙다"고 말했다. 그는 "담보대출 편중 등 은행들의 잘못으로 비롯된 부담을 중앙은행에 떠넘기려 하지 말고, 정말 시스템이 흔들릴 정도라면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마땅한 책임을 묻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반면, 다른 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사태로 자금 중개기관인 은행이 어려움을 겪어 기업과 가계 전체의 자금 조달비용이 높아지고 있는 만큼 시장안정 차원에서 한시적인 유동성 공급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건설사나 중소기업의 만기연장을 종용당하는 은행 입장에서는 그만큼 자금이 묶여 어려움이 커진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김용식 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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