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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김대중과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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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김대중과 오바마

입력
2008.10.28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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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인연이란 묘하다. 나와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이 그러하다. 1971년 대선에서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부정선거로 간발의 차이로 패배했다. 이 부정선거에 항의하다가 개인적으로 감옥을 가야 했다. 김 전 대통령 때문에 감옥에 간 '제 1호'가 된 것이다. 이후에도 반독재투쟁과 관련해 나는 그에 대한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 이후 그가 분열을 해 국민적 여망에 찬물을 뿌리고 지역주의의 전면화에 일조를 한 것을 보면서, 또 호남의 한을 볼모로 사당정치와 지역정당체제에 앞장서고 광주학살의 주범인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광주의 피가 묻은 거액의 더러운 돈을 받은 것을 보면서,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 3김정치의 청산을 주장했다.

DJ에 승리 안겨준 경제위기

특히 1997년 대선에서는 그의 출마가 3김정치라는 면에서 규범적으로 문제가 있는 데다가 '필패카드'라고 주장했다. 보다 구체적으로, 3김정치의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호남의 한을 풀기 위해 김 전 대통령의 집권은 바람직할 수 있으나 지역주의와 여당이 들고 나올 3김정치 청산론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정권교체와 세대교체가 동시에 가능하도록 김 전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 젊은 '제 3후보'를 밀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그러나 나의 예상과 달리 김 전 대통령은 선거에서 승리했다. 대선 후 쓴 자아비판에서 고백한 바 있듯이 갑자기 터져 나온 환란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김 전 대통령과 유신세력인 김종필 자민련 총재가 DJP연합을 했고 이인제 의원이 여당의 경선결과에 불복해 출마를 강행했지만 경제위기가 아니었다면 김 전 대통령은 97년 대선에서 졌을 것이다.

이는 한국전쟁 이후 최고의 국난이라는 1997년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김 전 대통령이 불과 1.6%로 이회창 후보를 이긴 것이 잘 보여주고 있다. 사실 97년 대선의 미스터리는 이 같은 국난, 그리고 DJP연합과 이인제의 출마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 김 전 대통령이 불과 1.6%밖에 이길 수 없었느냐는 것이다.

1997년 경제위기는 우리들에게 엄청난 고통과 불행을 가져다 줬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내몰리고 목숨을 끊기도 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위기는 그간의 한국사회를 이끌어온 냉전적 보수세력의 지도력에 결정타를 가함으로써 한국정치사상 최초의 평화적인 여야간의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호남이 그간의 한을 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이다.

비슷한 일이 지금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민주당 대통령후보는 초반까지는 이라크 전쟁 등 부시정권의 실정에 힘입어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에 대해 우위를 점해 왔다. 그러나 흔히 '브래들리 효과'라고 부르는 인종변수에 의해 과연 백인들이 실제 선거에서 오바마를 찍을지 의심이 갔다. 게다가 매케인이 부통령후보 지명에서 승부수를 던지면서 앞서 가기 시작했다.

오바마도 금융대란의 덕 볼 듯

이 때 터져 나온 것이 바로 최근의 금융위기였다. 이는 지난 8년간의 공화당 지배에 최후의 일격을 가한 결정타가 되고 말았다. 금융위기는 미국, 나아가 세계를 엄청난 고통으로 몰고 가고 있다. 그러나 역으로 브래들리 효과에 쐐기를 박음으로써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끌려온 미국 아프리카계의 쌓이고 쌓인 한을 풀어 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 것이다.

1997년 경제위기에 따른 김 전 대통령의 당선에 이어 최근의 금융대란에 따른 오바마의 선전을 바라보면서 역사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1997년 한국과 2008년 미국이 보여주듯이 역사는 잔혹하지만은 않다. 대신 불행 속에 호남대통령과 아프리카계 대통령 탄생과 같은 기쁜 일도 숨겨 놓는 것이다. 아니 불행과 고통은 역사의 진보가 가능하도록 역사가 설치해 놓은 역사의 간지인지도 모른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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